국내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할 때 유독 기존 사명이 그대로 유지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대우’라는 명칭을 달고 있던 회사들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여기저기로 흩어졌지만 금융·조선·자동차·무역·전자 등 대우의 옛 계열사들은 전통과 실력으로 대우의 명맥을 잇고 있다.
대우라는 이름을 아직 갖고 있는 회사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국내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다. 지난 2015년 미래에셋금융그룹에 인수됐지만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직접 대우 사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당시 “대우증권이 한국 증권사에서 갖는 역사성을 생각하면 대우 이름을 가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73년 대우실업이 동양증권을 인수하고 1983년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대우증권은 대우그룹 해체 때 산업은행 산하로 편입된 뒤에도 KDB대우증권이라는 사명을 사용했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증권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있는 ‘대우’를 그 어느 인수기업도 버리지 않았다”며 “핵심경쟁력이 사람인 증권가에서 대우증권 출신 인사들은 여전히 여의도 증권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2위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도 대우그룹의 핵심계열사로 출발한 회사다. 1978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한조선공사의 옥포조선소를 인수하며 대우조선공업을 설립했다. 옥포조선소는 아직도 대우조선해양의 선박 건조 근거지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중공업·대우종합기계, 대우조선공업으로 나뉜 뒤 산업은행 체제로 들어가 2002년 지금의 대우조선해양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잠수함 건조능력을 바탕으로 한국 조선업 전성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현재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결정하고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대우그룹의 주력 계열사였던 대우전자는 돌고 돌아 현재 ‘위니아대우’로 명맥을 잇고 있다. 1974년 설립된 대우전자는 1980년대 대한전선 가전 부문 인수를 계기로 가전 사업에 뛰어들었다. 1만시간 화질실험을 거친 TV 등 ‘튼튼한 가전’을 만들자는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경영은 제품이 너무 튼튼해 신제품이 안 팔린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대우그룹 해체 후 대우모터공업을 통해 2002년 대우일렉트로닉스가 출범한 뒤 2013년 동부그룹에 인수되며 동부대우전자로 변경됐다. 지난해에는 대유위니아그룹으로 편입되며 위니아대우로 명칭을 바꿨다.
한국GM 역시 대우자동차에서 이어져온 완성차 업체다. 1978년 김 전 회장이 새한자동차를 인수하며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고 1983년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르망·로얄살롱·티코 등 인기 차종을 출시했지만 2000년 대우그룹 해체로 법정관리에 들어가 이듬해 GM으로 넘어갔다. 2011년까지 GM대우라는 이름으로 ‘대우’ 명칭을 유지해오다 한국GM으로 사명이 바뀌었다.
최근 포스코대우에서 이름을 바꾼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모태는 ㈜대우다. 김 전 회장의 세계경영 철학을 실현하는 핵심계열사 역할을 했다. 2000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대우 무역 부문이 대우인터내셔널로 바뀌었고, 2010년 포스코그룹에 인수된 뒤 2016년에 포스코대우로 사명이 변경됐다. 이어 올 3월 포스코인터내셔널로 사명을 변경하며 ‘대우’를 내려놓았지만 ㈜대우 시절 닦아놓은 글로벌 네트워크는 여전히 국내 최고로 인정받는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