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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트럼프, 그날이 다시 오면

김영필 뉴욕특파원





얼마 전 미 하원의 민주당 고위관계자를 만났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한미동맹을 물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고립주의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시리아 철군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병력 감축이 주한미군도 철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비치는 것 같다.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줄이면 의회가 막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와 만난 지 며칠 뒤, 하원은 주한미군 규모를 현 수준인 2만8,500명으로 유지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켰다.

이제 논란은 끝인 걸까. 당장 연말이 관건이다.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시한이 31일이다. 셈이 빠른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주둔비는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박혀 있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50억달러와 우리나라가 제시하는 금액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할 것이다. 한 관료는 기자에게 “협상이 뜻대로 안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하겠다고 트위터에 올릴까 겁난다”고 했다. 농담 섞인 얘기였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NDAA가 주한미군 철수를 막아준다지만 미국의 안보에 이익이 되거나 동맹국과 적절한 논의를 하면 예외가 인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일을 트럼프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에는 3개의 권력이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다. 외교와 안보에서는 공화당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에 반대하지만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 임기 4년과 8년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민주당은 다음주 하원 본회의에 탄핵소추안을 올린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만큼 쉽게 통과될 것이다.

상원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100석 가운데 53석이 공화당이다. 지난 10월 말 있었던 탄핵조사의 정당성을 묻는 하원 전체 투표에서 민주당은 반란표(반대)가 2명 나왔지만 공화당은 기권(3명) 말고는 없었다. 지금의 공화당을 보면 탄핵이 최종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거꾸로 탄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타임지에 따르면 앞선 하원 투표 날이나 지난달 13일 공개청문회가 시작된 날 트럼프 대통령의 후원계좌에 수백만달러가 입금됐다. 4일 나온 로이터 여론조사에서도 탄핵 찬성과 반대가 45%로 같았다. 민주당 내에서도 상원 통과가 어렵다고 보고 두 달도 남지 않은 경선에 방해되지 않도록 절차를 서두르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가 탄핵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할 확률이 적지 않다. 여론조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우리는 최악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전략은 간발의 승리다.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 득표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승자독식인 선거인단 제도 아래에서 플로리다 같은 ‘스윙스테이트(경합주)’를 따내는 게 목표다. 지난번 선거도 이렇게 이겼다.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제지표도 지금으로서는 트럼프에게 유리하다.

트럼프 현상을 특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12일(현지시간) 열린 총선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 완수’를 내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과반을 넘는 364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존슨 총리의 승리가 지닌 의미는 뚜렷하다. 자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다. 전 세계의 흐름이 바뀌고 있고 그 선두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2017년 1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미국 우선주의가 새로운 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이 다시 오게 된다면 미국 우선주의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때 가서 허둥대기에는 너무 늦다.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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