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 정부의 조선산업구조조정 대책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간 합병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민간기업들이 추진 중인 ‘조선사 빅딜’을 마뜩잖게 보던 일본이 국제여론전을 펴는 식으로 발목잡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풀지 않는 등 양국관계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 수위를 한층 높이려는 정치적 셈법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2일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조치가 WTO 보조금 협정에 위반된다며 WTO에 분쟁해결절차 상의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양자협의는 WTO 분쟁해결절차의 첫 단계로서 공식 제소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앞서 지난 2018년에도 같은 혐의로 한국을 제소한 데 이어 재차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일본은 이번 제소장(양자협의요청서)에 지난해 한국 정부가 추가로 시행한 조선업 관련 조치를 포함했다.
제소장에는 국책은행(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민영화 조치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조선산업 재편 차원에서 보유 중인 대우조선 지분을 현대중공업에 넘겼는데 이 조치가 WTO 규범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WTO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간 합병을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본의 구체적인 제소 내용은 WTO가 공표하기 전까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어떤 점에서 양사 합병을 WTO 협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통상전문가들은 보조금으로 명맥을 유지한 대우조선이 합병으로 덩치가 커지면 자국 산업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일본이 펼 것으로 전망했다. 통상 분야의 한 전문가는 “일본은 정상적으로 지급된 보조금이라도 타국 산업에 피해를 준다면 협정위반 소지가 있다는 논리를 전개할 것”이라며 “하지만 일본 측이 피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WTO에서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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