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을 놓고 남매간 지분 확보 전쟁이 한창인 한진칼(180640)이 시장성 자금 조달을 중단했다. 자회사 실적 하락에 따른 현금흐름 악화 전망과 집안 내홍으로 인한 투심 위축 우려로 당장 차환 발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진(002320)칼은 이달 초 만기가 돌아온 700억원 규모 회사채를 차환없이 보유 현금으로 상환했다. 점입가경인 경영권 분쟁과 악화된 재무구조, 녹록지 않은 영업환경 등 대내외적 요인으로 투자 수요 확보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서다. 실제로 한진칼의 주력 자회사인 대한항공(003490)은 지난해 두 번의 미매각을 겪으며 회사채 시장의 ‘악성 매물’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새롭게 신용등급 평정을 받아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한진칼의 신용등급은 지난해 4월 회사채 발행때 부여받은 BBB가 마지막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지주사인 한진칼은 상표권과 지분법이익, 배당금, 부동사 임대 등으로 수익을 낸다. 주력 자회사인 대한항공과 한진의 신용도와 자체 현금흐름, 재무구조 안정성 등에 영향을 받는 구조다. 지난해 3·4분기 기준 한진칼의 관계기업투자손실은 2,473억원으로 전년 동기 354억원 대비 약 8배 급증했다.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대한항공으로 2,436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일본 불매운동과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비 부담, 글로벌 물동량 감소 등 영향이 컸다. 올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세계 곳곳에 한국발 비행기의 입국이 금지되는 등 영업환경이 악화일로기 때문이다. 국내 신평사들은 대한항공의 올해 매출이 작년 대비 3~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EBITDA(상각전영업익) 대비 순차입금이 7.9배를 웃돌면서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높아진 상태다.
다행히 한진칼의 재무안정성이 당장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3·4분기 기준 한진칼이 1년내 갚아야 하는 차입금(유동성 단기차입금)은 2,080억원 규모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764억원, 정기예금 등 단기금융상품은 4,040억원으로 추가 자금조달이 없어도 충분히 상환할 여력이 있다. 문제는 자회사의 우발채무 리스크다. 지주사인 한진칼은 종속기업인 칼호텔네트워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원리금(2018년 말 기준 약 2,243억원)을 상환할 자금이 부족한 경우 칼호텔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약정을 산업은행과 체결했다. 상법에 따라 분할 전 대한항공의 채무보증에 대해 연대해 변제할 책임도 있다. 이미 부채비율이 900%에 육박한 대한항공은 올해부터 1조원 이상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도 상환해야 한다. 만기는 30년 이상이지만 조기 상환하지 않으면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한진그룹이 3월 주총이 끝나고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되는 2분기를 지나고나서야 회사채 등 시장성 자금 조달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경영권 향방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 국면에서는 공모든 사모든 투자자 모집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며 “현금흐름이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총이 끝나고 그룹 이미지가 정상화되면 시장에 다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민경기자 mk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