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發) 2차 충격에 빠져 들고 있다. 원부자재를 겨우 겨우 조달해 제품을 생산했더니 코로나19로 한국의 입국을 제한한 국가들이 급증하면서 해외판로 개척이 막히는 바람에 재고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중국산 원부자재를 국내산으로 돌리자 조달원가가 상승해 판매가 어려워지고 있고, 판다고 하더라도 기존 가격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기형적인 구조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어서 국내 산업의 등뼈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들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주문 취소가 잇따르면서 중소기업이 재고부담이 커지고 있다. 4만 7,847개 섬유업체 중 15%인 7,487개사가 몰려 있는 대구·경북지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역 염색 업체의 경우 통상 4월까지 공장 가동률이 80%를 웃도는 데 현재는 재고부담 때문에 50%로 뚝 떨어졌다. 대구의 한 섬유업체 임원은 “바이어와 대면접촉이 줄다 보니 오더(주문)가 지연되거나 취소되고 있어 공장을 가동해 봐야 재고부담만 안을 뿐”이라며 “특히 바이어들이 대구에서 생산됐다는 이유로 주문을 꺼리고 있어 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의 진원지였던 중국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불안감이 커 직구가 급감했던 것처럼 대구 지역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 국내외 바이어들이 주문을 잇따라 취소하고 있어 재고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만든 제품이 안 팔리니 재고가 쌓이고 주문 급감도 더해져 공장 가동률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들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한기 대구 섬유산업협회 이사는 “원래 내수가 줄면 수출을 늘리고, 수출이 줄면 내수를 늘리면서 실적 밸런스를 잡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이 같은 균형이 무너졌다”며 “해외 판로는 전부 막히고 국내 물량도 반 토막 이상 났다”고 지적했다.
영세 업체가 대부분인 인쇄·금형 중기도 재고로 몸살을 앓는 곳이 적지 않다. 직원 수 십여 명의 인쇄업체를 운영하는 이 모 사장은 “지업사로부터 인쇄 수주를 감안해 용지를 많이 확보해 놨는데 주문이 90% 가까이 취소됐다”며 “용지를 다 놀리게 됐다”고 허탈해했다. 경기도 반월 공단에 있는 한 금형업체 관계자도 “공장 자동화와 같은 공장 투자가 증가해야 금형 수요도 뒤따라 생긴다”며 “그러나 매출급감에 유동성 문제까지 발생한 기업들이 줄줄이 공장 투자를 미루거나 포기하면서 금형 설비 재고만 쌓여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서 들여오던 원부자재를 국산으로 교체하면서 원가부담을 호소하거나 베트남 등으로 옮겼다가 품질 경쟁력이 떨어져 애로를 호소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경기도의 한 기계업체 K사장은 원부자재의 안정적 조달을 위해 중국산 일부를 국내산으로 돌렸더니 원가가 150%나 뛰어 속이 타고 있다. 더 싼 원부자재를 구하기 위해 동남아 등으로 채널을 물색하고 있지만 입국제한으로 당장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다. K사장은 울며 겨자먹기로 안정적인 제품생산을 위해 원가가 비싼 국내산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사장은 “제품 원가가 올라 팔아도 걱정”이라며 “제품 가격을 바로 올릴 수는 없어 당분간 마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 섬유 업체 사장은 “중국 원부자재가 부족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원사를 섞어 쓰면서 버티고 있다”며 “재료가 바뀌면서 품질에 버그가 발생해 이를 바로 잡는데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는 판”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3~4개월 이상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실적악화에 따른 감원 도미노가 현실화될 수 있다.
코로나발 악재들이 주문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은행권 대출상환 압박 및 추가 보증 어려움→자금난 심화→공장가동률 지속 하락→감원 우려 점증 등으로 악순환 될 조짐이다. 한 업계 임원은 “피해 기업에 대한 우대금융이나 관세 납부 유예 등의 지원과 함께 공공 발주를 기존 계획에 맞춰 진행되도록 디테일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훈·이재명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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