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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배우이자 펭수 작가” 염문경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 ⑥] “평생 글 쓰는 배우로 살고 싶어요.”


창업을 넘어 ‘창직 하는 사람(Job Creator)’들이 늘고 있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회사에서 찾지 못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개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직업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은 스스로 창직을 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과 산업 두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커리어를 꿈꾸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전하고자 한다.

배우이자 ‘자이언트 펭TV’ 작가로 본인만의 새로운 영역을 만든 염문경 씨.




스스로를 ‘다목적 프리랜서 배우’라고 소개하는 여배우 염문경.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다양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상업 영화, 독립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장르를 넘나들며 배우로 활약 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이언트 펭TV’의 메인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배우에게는 연기라는 한 장르에만 집중하는 걸 미덕으로 여긴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신비로운 기운이 왠지 가득하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한편 가지게 된다. 염문경 배우를 보며 직업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꼈다.

한 우물 파라는 조언을 주변 분들에게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가지고 있는 끼와 재능, 도전과 욕심이 컸다. 평생 글 쓰는 배우로 살고 싶다는 염문경 배우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학로는 그녀가 전천후 배우라는 걸 알게 해준 시작점이기도 했다.


연극 동아리를 통해 결심한 직업

-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했다. 연기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대학 때 연극동아리를 하다 연기에 관심이 생겼다. 보통 서너달 준비한 연극이 끝나면 재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늘 뭔가가 아쉬웠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연기를 잘 하는 친구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했다.”

- 대학 때 첫 작품은?

“‘죽다 살다 죽은 사나이’라는 창작 작품이었다. 그 당시 연출이 MBC에서 ‘퐁당퐁당 러브’, ‘우주의 별이’ 등을 연출한 김지현 피디였다.”

- 배우가 되어야겠다, 결심한 순간은?

“때마침 UC 버클리로 교환학생을 갔는데 Film & Theater 관련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을 들으며 내가 진짜 연기를 하고 싶은 건지 단지 철없는 생각인지 고민하며 답을 찾아갔다. 그렇게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 연기자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연기 스터디를 시작했다. 선생님 없이 지망생들끼리 모여 연기 공부를 하는 것이다. 우리끼리 주제를 정하고 연습을 했다. 이 과정을 연극 연출가 선배에게 말씀 드렸더니 실제 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며 그만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 이후 전문 극단에서의 조연출을 했다.

“선배의 소개로 두산아트센터에서 했던 ‘뻘’ 이라는 공연의 조연출로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 연극 을 경험한 첫 시작이었다. 어떻게 공연을 준비하고 배우들이 연기를 표현하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 당시의 경험이 이후 연기생활에 큰 기반이 되었다.”

-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사실 연극을 하다 보면 열악한 체계나 적은 보수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좋은 극단에서 진행한 작품이었고 두산아트센터라는 좋은 프로덕션과 경험을 했다. 이후 다른 극단에서 작품을 할 때 이게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다.”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부터 단 하루도 게으르게 살았던 적이 없다.




프로 배우로 무대에 오르다

- 프로 배우로서의 첫 무대는 무엇이었나?

“데뷔는 프린지페스티벌이었다. 하지만 프린지는 축제고 오디션을 보지 않았으며, 돈을 받는 구조도 아니었다. 오디션을 통해 정식 배우로 올라간 건 대학로에서 했던 ‘메데아 코리아’라는 공연이었다. 국악이 접목된 연극이었는데 꽤 고전적인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 첫 무대와 공연, 특별한 기억은?

“프린지에서 다뤘던 작품 주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해방구’라는 작품이었는데 당시 쌍용 자동차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요소가 강한 공연이었다. 현재 진행형인 사회적 이슈를 진지한 자세로 임했기에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 연기 스타일을 잡아가는 본인만의 흐름은?

“최대한 다양한 작품, 연출들을 만나며 여러 연기를 해보려고 했다. 오디션도 많이 봤고, 다양한 역할들을 풍부하게 경험했다. 자연스레 캐릭터를 쌓아가는 과정을 잡아갔다.”

- 연기 전공자가 아니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동아리 경험이 전부였기에 기술적인 부분이 아무래도 부족했다. 반면 비전공자이기에 좋은 점도 있었고. 연극영화과 준비생은 더러 입시 연기라는 걸 배운다. 어떤 연기의 모양을 만드는 과정인데 그게 고착화 되는 경우가 있더라. 나의 경우 그런 버릇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게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 롤모델이나 멘토가 있나?

“롤모델로 생각하는 배우는 메릴 스트립. 이성과 감정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기술로서도 뛰어나지만 진정성도 모자람이 없는. 본인의 가정과 개인에도 충실한 분이다. 멘토는 최희서 배우. 친한 언니로서도 좋지만 배우로서 필요한 조언을 정말 잘 해주신다.”

- 최희서 배우와의 인연은?

“UC 버클리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선배들의 후기들을 쭉 읽어보았다. 그런데 Film & Theater 관련 수업을 들은 유일한 선배가 최희서 배우였다. 조언을 구하고자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드렸다. 이미 배우 활동을 시작한 희서 언니를 보며 이 길을 가도 되겠다는 생각도 막연히 했다.”

- 최희서 배우도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자극이 된다. 배우로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희서 언니의 좋은 점이 늘 차분하고 한결같다는 것이다. 본인이 추구하는 바도 명확하고. 그런 언니의 조언들이 배우 생활에서 큰 힘이 된다. 그런 침착함을 닮고 싶다.”

- 슬럼프는 없었나?

“사실 엄청 잘 나갈 때 찾아오는 게 슬럼프 아닐까. 나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웃음) 작품마다 힘겨울 때는 분명 있을 테고, 미래는 늘 불안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 2012년 데뷔 후, 벌써 9년차다. 배우로의 지향점은?

“연기를 신비화 하는 과정을 지양하려고 한다. 결국 연기는 사람과 사람 간 소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연기에 대한 약속들을 잡고, 감정적으로 캐릭터를 잘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작업 과정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처음으로 도전한 뮤지컬 장편 영화, <빈집>




다양한 장르에의 도전

- 영화, 드라마 등 매체로 넘어간 계기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생계를 위해서. 아무래도 페이가 나오니까 생활이 가능하다. 다음 이유는 연극적 연기가 아닌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연극을 하게 되면 작품의 문법을 따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화 등 매체는 인물에 집중하는 부분이 있다.”

- 영화 오디션을 많이 봤다.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영화 ‘도어락’ 오디션을 봤을 때가 기억난다. 은행 직원 역을 맡았다. 준비한 톤으로 연기를 했는데 당시 인물 조감독님께서 굉장히 재밌어 하셨다. 사실 내 연기톤이 노잼이라 걱정을 많이 하곤 했는데 재밌어하는 모습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 반면 아쉬웠던 지점은?

“오디션으로 ‘미씽 : 사라진 여자’에 캐스팅 됐는데 촬영 분량이 아예 나오지 않았다. 부산에서의 촬영 씬이었고, 열심히 준비해 촬영을 마쳤는데 내 분량 자체가 통 편집 되었다. 사실 조단역 배우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다. 영화 ‘박열’도 내 분량이 결국 나오지 못했다.”

- 너무 아쉬웠겠다. 엔딩 크레딧에는 올라갔나?

“다행히도 엔딩 크레딧에는 올라간다. 억울하진 않고, 상업 영화에 대한 좋은 경험들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 드라마 장르에서의 경험은?

“‘멍냥꽁냥’이라는 EBS 웹드라마에서 작가 겸 카메오 연기를 했다. 당시 연출이 ‘자이언트 펭TV’의 이슬예나 피디였다. 이 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 가장 인상적인 영화가 ‘악질경찰’이었다.

“그렇다. 당시 셋트부터 장면까지 부담이 컸는데 감독님께서 긴장감 버리라며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덕분에 쉽게 촬영이 끝날 수 있었고. 빠른 시간 내 무사히 끝나 다행이었다.”

- 흥행이 조금 더 잘 됐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부모님을 처음으로 상업영화 시사회에 초대할 수 있어서 기뻤다. 감독님께서 한 사람의 배우로 대우 해주셨다는 것도 감사했고. 아버지가 마침 이정범 감독의 팬이기도 했다.”

- 뮤지컬 영화, ‘빈집’도 배우로 참여했다.

“김동명 감독 작품이었는데, 뮤지컬 영화라서 찍고 싶었던 게 컸다. 뮤지컬 영화 장르를 독립영화가 도전한다는 게 신선해서 김동명 감독과는 종종 작품을 함께 한다.”

- 본인이 감독으로 참여한 적도 있다고?

“‘현피’라는 영화를 감독 겸 배우로 참여했다. 감독 타이틀이 있어야 지원사업에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많아 시도해 보았다. 아무래도 촬영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장면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 다행히 ‘빈집’ 촬영 감독님이 도움을 주셔서 잘 마무리 되었다.”

- 감독으로서 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땠나?

“구체적인 디렉션이 가능했다. 연출자가 배우에게 디렉션을 줄 때 표현 방법이 서로 어려운 경우가 참 많다. ‘보랏빛으로 걷는 느낌.’ 같은 주문들. 그래서 더 소통하기 쉬운 언어를 쓰려 노력하게 되더라.”

눈빛 연기가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던 영화, <악질경찰>




여배우, 작가가 되다

- 작가로서 시작은?

“‘퐁당퐁당 러브’ 보조 작가가 시작이었다. 동아리 첫 연출이었던 당시 MBC 김지현 피디의 제안이었다. 평소 SNS에 쓰던 글을 보고 작품을 해보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김지현 피디 역시 드라마 연출 겸 대본을 직접 쓰는 작가이기도 해 빠른 시간 훈련 할 수 있었다.”

- ‘퐁당퐁당 러브’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작가로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웹드라마로 엄청나게 주목을 받은 작품이었고. 내가 준비한 아이디어들이 장면으로 나온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나?

“2015년 방영된 ‘퐁당퐁당 러브’ 때만 해도 단기 참여의 마음이 컸다. 어느 정도 수입이 있었기에 참여한 것도 있었고. ‘퐁당퐁당 러브’가 끝난 후에는 작가로서의 경험도 끝이라 생각했다.”

- 그러다 또 어떤 인연으로 이어지게 됐는지?

“방영 직후 이슬예나 피디를 소개받았다. 당시 EBS에서 어린이 드라마 입봉을 준비 중이었다. 작가를 구하고 있었는데 김지현 피디가 나를 추천해 줬다. 내가 쓴 작품을 사람들이 재밌어 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로서의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 어린이 드라마 ‘마법소녀 최리’가 첫 작품이다. 어떤 마음으로 썼나?

“어린이를 어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걸 지양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고정관념도 깨고 싶었고. ‘마법소녀 최리’의 경우 자매 이야기였고, 동생의 상상에서 시작되는 구조다. 이런 작은 이야기를 드라마로 깊게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 연출자와의 첫 호흡, 어떤 경험이었을까?

“이슬예나 피디는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할 만큼 친하지만 늘 피디와 작가로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한다. 작가로서 잘 할 수 있게 판을 잘 깔아준다.”

- 참 절묘한 인연과 타이밍이다.

“작가로서의 성장, 메인 작가의 타이틀까지 정말 빠른 시간에 이룩했다. 하다 보니 나만의 스타일도 만들어졌고, 어떤 노하우들이 생긴 거 같다.”

- 어떤 노하우인가?

“내가 무슨 장르를 잘 표현하는지 알게 됐다. 아무래도 ‘퐁당퐁당 러브’가 시작이다 보니 로맨틱 코미디 장르 쪽으로 집중하게 되더라. 외부에서의 각색이나 자문도 이쪽 분야로 많이 들어오고. 자연스레 어떤 길이 생긴 것 같다.”

작가로의 경력을 시작한 웹드라마, <퐁당퐁당 러브>




펭수 작가, 염문경

- ‘자이언트 펭TV’의 시작은?

“이슬예나 피디의 제안이었다. 당시 이슬예나 피디가 신규 프로그램 TF 팀에 들어갔는데 여러 아이템 중 하나였던 ‘자이언트 펭TV’가 채택되었다. 그게 2019년 초 일이다.”

- 펭수의 캐릭터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

“특정 젠더에 대한 툴을 씌우고 싶지 않았다. 또 착하거나 모두를 사랑하는 아이 보다는 짓궂고 장난스럽고 허언증일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캐릭터를 전하고자 했다. 달리기를 못하면 딴 걸 잘하면 돼,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었고. 그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랐다.”

- 갑작스레 인기가 많아져 정신없겠다.

“이육대가 터졌을 때는 ‘드디어’ 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후 갑자기 너무나 빠른 성장에 어안이 벙벙했다. BTS를 실제로 만날 줄 누가 알았겠나. 정말 펭수의 말 한마디가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 당시 팀 분위기는 어땠나?

“행복하고 기쁜 건 일주일. 이후 우울 등 감정 기복의 연속이었다. 해야 하는 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협찬 등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아졌고. 외부와의 소통도 때론 쉽지 않았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초반의 의지가 줄어드는 순간, 다들 힘들었을 것이다.”

- 급인기 만큼 최근의 ‘급정체’도 힘들 것 같은데?

“내부 회의와 워크샵을 하며 방법을 고민 중이다. 펭TV 스튜디오는 마치 하나의 스타트업처럼 움직인다. EBS에서 그동안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의 연속이고. 그걸 팀에서 개척하듯 해나가고 있다. 스타트업처럼 함께 고민 하다보면 좋은 결론이 나지 않을까.”

- 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은 누가 정했나?

“‘자이언트 펭TV’의 회의 과정이나 팀 분위기를 이야기했더니 스타트업 같다는 피드백을 누군가 주었다. 비슷한 또래가 모여 공동의 목표를 치열하게 이뤄가는 모습 때문인 거 같다.”

- 배우보다 더 바쁜 작가의 삶, 혼란스럽다는 글을 읽었다.

“혼란의 글을 쓴 게 100만 구독자 시점이었다. 사실 펭TV는 초기 기획으로만 참여해 10회차 정도까지만 하려고 했다. 배우와 작가를 병행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그러다 갑자기 인기가 올라가다보니 너나 할 거 없이 투입돼야 했다. 상의 끝에 팀에 잔류하게 되었다.”

- 지금은 작가로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전체 기획회의를 중심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실 펭TV 작가팀의 경우 각자가 본인 에피소드를 책임지는 형식이다. 초창기 멤버라는 지점 말고는 나 역시 펭수 팀이나 작가 팀 중 하나의 일원일 뿐이고. 선후배 개념 없이 각자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으로 일하는 구조다.”

- 펭수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펭수는 늘 씩씩한 편이다... 만, 그래도 힘들 땐 가끔 털어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 펭수에 성인들이 더 공감하는 이유는 뭘까?

“공감도 있겠지만, 위안이 가장 크지 않겠는가.”

재미있는 콘텐츠를 늘 고민하는 펭TV 팀. 언제나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출처=자이언트 펭TV




‘자이언트 펭TV’ 시즌2를 준비하며

- 봄방학 시기라고 들었다.

“쉬는 시간을 가지려던 차였다. 너무 쉼 없이 달려오기만 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4월부터 다시 시작될 ‘자이언트 펭TV’는 시즌 2의 개념이다.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큰 차이 없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조금 새로운 방향으로 준비 중이다.”

- 기획 회의는 어떤 분위기인가?

“의사 결정이 빠른 편은 아니다. 아직은 가능한 많은 의견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브레인스토밍처럼 수다를 떨며 인사이트를 얻기도 하고. 재미있는걸 만들자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팀 에너지가 좋은 편이다.”

- 펭클럽은 프로그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펭수의 팬클럽을 보면 아이돌 팬덤 만큼이나 단단하다. 그래서 정말 아이돌을 키우듯이 가야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재미를 잃지 않되 펭수를 좋아해주는 팬덤을 염두하며 가려고 한다.”

- 펭클럽은 펭수의 어떤 모습을 기대할까?

“사실 펭수를 아껴줄수록 기본적으로 좋아하시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어떻게 연출해야 더 발전할지는 제작진이 고민할 몫이다. 많은 시도가 필요할 것 같다. 유튜브 외 다른 길도 찾아보며 캐릭터 저변을 넓혀 갈 예정이다.”

- 기획회의에 펭수도 참여하나?

“체력 보전을 위해 가끔씩만 참여한다.”

- 작가로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지?

“펭TV 작가를 하기 전에는 유튜브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채널인 만큼 수시로 다른 채널들을 스터디한다. 한편 시청자로 고민하는 부분도 있다. 내가 시청자라면 펭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을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다.”

염 씨는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하며 프로그램 저변을 넓혀가고자 한다.




직업인으로서의 비전과 미래

- 이제 수입은 일정해졌나?

“여전히 일정하진 않지만 연극만 할 때에 비해서는 꽤 안정적이 되었다. 여러 계약들을 했고 작업할 것들도 순차적으로 있다. 올해 안에 내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책도 한 권 낼 예정이고.”

- 결국 시간이 지나면 특정 직업으로 수렴되지 않을까?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사실 가장 부족하다. 막상 연출자로서 연기하는 연기자들을 보면 내가 더 하고 싶기도 하고. 배우와 작가 중 선택해야 하는데 너무나 어렵다. 아직은 둘 다 하고 싶다.”

- 재능이 너무 많아 고민되지 않나?

“사실 뭘 해도 무난한 8점이라는 생각일 때가 많다. 다양한 재주는 감사한데 한때는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게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 어렸을 때 꿈은?

“만화가였다. 중학교 때 까지 진로로도 깊이 고민했다. 나름 굉장한 만화 덕후기도 했고. 그 때 만화를 좋아했던 것들이 지금의 작가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사실 내가 라면을 너무 좋아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을 만큼.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 라면이 맛있어서 먹었다기보다 라면을 먹으며 만화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주로 좋아하는 콘텐츠를 반복하며 읽고 보는 편이다. 라면 먹으면서.”

- 직업인으로 올해의 계획은?

“배우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작가로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감독으로서 좋은 작품에 지원사업을 꾸준히 내보는 것.”

- 배우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마디.

“당신이 못나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수없는 의문이 들겠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좋아하길. 그래야 연기도 더 빛날 테니까.”

염 씨는 의 꿈을 안고 시작한 대학로에서. 올해도 여러 꿈을 꾸고 있다.


원부연.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 객원기자. 전 광고 기획자에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로 창직 후 술집, 극장, 살롱 등 서로 다른 9개의 공간을 런칭했다.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퇴사 말고, 사이드잡> 세 권의 책을 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원부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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