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발(發) 신흥국 부도가 현실화할 조짐이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가 악화하고 있는 남미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이 최근 채무 불이행(디폴트) 직전으로 강등됐고 아프리카의 잠비아는 원자재 수요 감소에 타격을 받아 국가 신용등급이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코로나19로 경기둔화 장기화에 힘이 실리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경제 체력이 허약한 아르헨티나를 포함해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 사례가 잇따르면서 자칫 연쇄 부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아르헨티나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Caa2에서 Ca로 두 단계 강등했다. Ca는 총 21단계인 무디스의 장기채권 등급 중 20번째로, 디폴트 단계인 최하 C보다 한 계단 높다. 등급 전망도 ‘검토 중(ratings under review)’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로이터통신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1,000억달러(123조6,000억원)에 달하는 채무 재조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채무 협상이 지연되면서 채무 불이행 위험이 높아지자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고 분석했다.
부채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잇따라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무디스는 구리 수요 감소로 부채 위험이 커지자 잠비아의 신용등급을 최저 등급 수준으로 조정했다. 또 다른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장기 외화표시 발행자 등급(IDR)을 BB+에서 BB로 하향 조정했다. 등급 전망은 ‘부정적’을 제시했다.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남미 국가들 역시 국제 유가 하락에 따라 추가적으로 신용등급이 하향될 가능성이 높다.
피치가 최근 영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추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신용등급 하향 수모는 선진국들도 겪고 있다. 그러나 신흥국과 선진국의 신용등급 조정에 따른 위험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부채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신흥국들이 코로나19로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완화(QE)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통화가치하락→자본 유출→부도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디스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신흥국의 최근 한 달 평균 자본 유출은 39억달러(4조8,200억원)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국제유가 급락과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미국 국채보다 국채 수익률이 10%포인트 높은 신흥국가도 20곳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투자가들이 경기둔화로 신흥국에서 가장 먼저 자금을 빼내기 때문인데, 문제는 경기둔화가 장기화 할 경우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코로나19 충격으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하향 조정되고 있고, 역성장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가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경제연구소 등 38곳의 이달 3일 현재 성장률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2.5%에 그쳤다. 블룸버그 집계로 지난 1월 현재 이들 기관의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3.1%였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지난달부터 전망치 수정이 연이어 이뤄진 데 따른 결과다. 38곳 중 5곳은 역성장을 전망했다. 특히 웰스파고는 올해 성장률을 -2.6%로 제시했고 줄리어스베어(-2.3%), 도이체방크(-1.7%), 나티시스(-0.9%), UBS(-0.6%) 등도 역성장을 예상했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최대 5,000조원의 손실을 볼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발표한 ‘2020년 아시아 역내 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제 손실 규모는 약 2조 달러(약 2,472조원)에서 4조1,000억 달러(약 5,067조원)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3∼4.8%에 해당하는 규모다.
로이터는 “코로나19는 신흥국 시장에 전례 없는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의료 지원과 기타 복지 등 막대한 자금 사용에 대한 요구로 일부 신흥국은 채무 의무를 이행하지 않게 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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