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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앞두고 창고行‥나는 연극 무대세트입니다"

코로나에 취소된 공연…공들인 세트·소품도 울상

국립극단 ‘화전가’ 설치 완료 후 공연 못하고 철거

“구상·설치에 3개월, 철거는 단하루” 허무함도

국공립단체, 1,800평 여주무대미술센터에 보관

수용 공간 좁아 사설 창고 임대해 관리하기도

“다시 만날 날 기대…무대 전체 어우러짐 봐주길”

국립극단의 연극 ‘화전가’는 무대 설치 완료 후 공연 취소가 결정됐다. 화전가의 무대 설치 과정(왼쪽)과 철거 후 창고에 보관된 세트./사진=국립극단




“저는 지금 경기도 여주에 있는 어두운 창고에 누워 있어요. 여기가 제집은 아니랍니다. 한 달 전만 해도 넓은 집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죠. 화려한 조명과 사람들의 박수를 기대하던 어느 날, 저는 컨테이너 상자에 실려 이곳으로 왔어요. 주변엔 저처럼 잠시 휴식 중인 친구들이 함께 살고 있지요. 제가 누구냐고요? 원래 있던 그곳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배우, 연극 ‘화전가’의 무대 세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한동안 많은 공연이 멈춰 섰다. 관객과의 만남이 불발되면서 아쉬운 것은 배우뿐만이 아니다. 공들여 제작된 세트와 소품, 의상 등 무대를 구성하는 ‘또 다른 배우’들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를 극복한 그 날을 기약하며 잠시 무대 아닌 창고에 몸을 누인 무대 장비의 이야기를 국립극단 무대기술팀 나혜민 감독과 알아봤다.

나 감독은 최근 개막을 앞두고 공연이 취소된 연극 ‘화전가’의 무대 감독이었다. 화전가는 2월 28일 개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연기가 아닌 취소를 결정했다. 극장에 무대 설치가 완료된 상태였다는 점에서 공연팀의 허탈감은 더욱 컸다. 나 감독은 “작품 배경이 1950년 4월 경상북도 안동이라 지난해 11월 초 이성열 연출과 무대 디자이너가 안동에 사전 답사를 다녀온 걸로 안다”며 “이때부터 올 2월 18일 무대 설치까지 약 3개월여가 걸렸다”고 전했다. 극 중 무대 바닥이 물에 잠겨야 하는데, 합판이 계속 물에 떠 애를 먹기도 했다. 합판 안쪽에 무게를 실어 어렵게 문제를 해결했건만, ‘코로나19에 따른 공연 취소’라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며칠에 걸쳐 세운 무대가 철거되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무대 설치에는 세트 팀과 조명 팀이 각각 10명 이상 따라붙는다. 여기에 전체 진행 스태프까지 더하면 투입되는 인력은 30여 명에 달한다.



공연 직전 취소된 연극 ‘파우스트엔딩’은 최근 연습실에 설치했던 주요 소품을 철수했다. 연극의 핵심 소품으로 제작한 6개의 들개 모형물(왼쪽)은 손상을 막기 위해 개별 운송 상자를 현장에서 제작해 창고로 옮겼다./사진=국립극단


철거가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공연을 염두에 둔 작품들의 경우 꼼꼼하게 정리·포장돼 전용 창고로 옮겨져 관리된다. 국공립 공연단체는 주로 경기도 여주에 있는 연면적 6,080.77㎡(건물 2개동) 규모의 한국문예회관연합회 무대 미술 센터 내 창고를 임대해 이용한다. 나 감독은 “목재의 뒤틀림을 비롯한 세트 손상을 막기 위해 전용 창고에 보관한다”며 “화전가는 음식 먹는 장면이 많아 사기그릇 소품도 상당한데, 이들 그릇은 하나하나 충격 흡수 포장재로 감싸는 작업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안타깝게 공연이 취소된 국립극단의 파우스트엔딩 역시 지난 17일 연습실에 설치됐던 가설 무대와 소품을 철수했는데, 들개 모양의 소품 6개를 포장해 전용 상자에 넣어 옮기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움직임을 위해 관절 기능을 넣어 제작했는데, 재질이 나무라 손상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한 마리 씩 크기에 맞춰 현장에서 목재를 잘라 운송 상자를 만들어야 하기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 세트와 소품은 공연마다 다르지만, 중극장 작품 기준 5톤 트럭 1~2대로 옮겨진다. 일부 대형 뮤지컬을 비롯해 세트 규모가 큰 공연의 경우 항온·항습 관리가 좀 더 전문적으로 이뤄지는 개별 창고를 임대해 쓰기도 한다.

수많은 작품의 탄생과 철거를 지켜본 나 감독이지만, 최근 몇 달처럼 마음이 아팠던 적은 없었다. 때 빼고 광 내 극장에까지 올린 무대가 단 한 번의 공연도 하지 못한 채 창고로 직행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나 감독은 “스태프의 수고를 알아달라는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며 “그저 관객이 공연을 볼 때 작은 소품,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곳까지도 신경 쓰며 전체의 어우러짐을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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