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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의 얼굴' TSMC와 SMIC…범 중국 파운드리 커넥션

장중머우, 장루징 인연은 인생 동반자 수준

최대 1년치 화웨이 칩 재고는 TSMC 덕분

칩 재고 많을수록 SMIC 기술배양 시간 벌어

SMIC 연말 7나노 가능할 지 초미 관심사





미국 정부가 지난 15일 대만의 파운드리 TSMC로 하여금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각종 칩을 사실상 못 만들게 하는 규제를 발표하면서 결국 TSMC가 두 손을 들었다. 이 규제는 4개월 뒤부터 시행되지만 이미 각종 외신에서는 TSMC가 화웨이로부터 신규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화웨이의 모바일 AP, 통신장비 칩, 화웨이가 인텔 중앙처리장치(CPU)의 대안으로 만든 중국 자체 CPU인 쿵펑 등을 다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되니 중국 파운드리인 SMIC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TSMC가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와의 거래가 막히면서 이제 SMIC가 TSMC의 역할을 맡아 화웨이 칩을 만들어야 한다. 언뜻 보면 TSMC와 SMIC는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TSMC·SMIC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들을 중국·대만 기업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범중국계 기업으로 묶는 게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 기업이라 해도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대만 기업이 나타난다. 여기에 대만 기업의 창업자는 중국 본토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대만 기업의 물심양면 도움을 받아 중국 반도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게 객관적이다. TSMC도 미국 편에 서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칼로 무 썰듯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TSMC가 화웨이와의 신규 거래를 단절했다지만 이번 규제가 발표되기 전까지 화웨이가 칩 재고를 축적할 수 있도록 도운 게 바로 TSMC다. TSMC가 이번처럼 극단의 규제가 나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화웨이 칩을 물심양면으로 만들어줬다는 얘기다. 지난해 TSMC의 리드타임(팹리스가 칩 주문 후 실제 칩을 인도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대 6개월까지 길어진 데는 화웨이가 실제 필요한 물량보다 많은 칩을 주문한 게 결정적이었다. 화웨이가 TSMC가 만들어준 칩 재고가 많으면 많을수록 중국 파운드리 SMIC가 기술을 배양하는 데 따른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시장에서는 화웨이가 모바일AP는 최소 6개월, 통신장비 칩은 1년치 재고를 확보한 상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만과 중국이 서로 배척하는 것 같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런 양면적인 메커니즘이 파운드리 현실에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SMIC의 설립 과정도 TSMC와 얼기설기 얽혀 있다. 2000년 SMIC를 설립한 사람은 리처드 장, 중국 이름으로 장루징이다. ‘중국 반도체 대부’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SMIC의 창업자 장루징은 바로 TSMC의 창업자이자 명예회장인 장중머우와 함께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함께 일했다. 장중머우는 1987년 TSMC를 세우고 2018년까지 무려 31년간 회장을 한 그야말로 대만 반도체의 신화 같은 존재다. 장루징이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장중머우의 바로 밑에서 수련했다는 뜻이다.

이들의 질긴 인연은 계속된다. 장중머우의 TSMC가 2000년 인수했던 대만의 반도체 기업은 바로 장루징이 만든 업체였다. 장루징은 이 기업을 TSMC에 판 돈으로 중국 본토로 건너가 그해 바로 SMIC를 설립했다. 당연히 중국 본토로 혼자 간 게 아니다. 대만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원들을 대거 데리고 갔다.



이런 배경과 역사를 알면 지금의 미중 관계 악화에 따른 반도체 시장의 역학 구도도 자꾸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분명 앞서 언급한 역사는 과거일 뿐이다. 현재 TSMC는 화웨이와 거래를 끊는 쪽으로 가고 있다. 화웨이가 애플에 이은 2대 거래처임에도 TSMC는 자신이 살기 위해 화웨이를 내쳤다. 화웨이는 TSMC 연간 매출의 15% 내외를 차지하는 VVIP 고객이다. 당장 이번 사달이 없었다면 스마트폰 플래그십 모델에 들어갈 모바일AP로 TSMC의 5나노 생산라인을 빼곡히 채워줄 수 있는 고객이 화웨이다. TSMC로서는 눈물의 결단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SMIC와 TSMC의 과거 얽히고설킨 관계를 한 번 더 고찰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악화일로의 미중 관계가 어떤 일을 계기로 다시 완화국면으로 간다면 TSMC로서는 여차하면 화웨이를 잡기 위해 빈틈을 노릴 게 틀림없다. 현재로서는 화웨이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TSMC가 미국에 붙은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TSMC의 야누스적 정체성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최근 닛케이에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위해 TSMC의 역할을 대신할 SMIC를 지원하려고 국고 펀드로부터 22억5,000만달러(한화 2조8,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기사가 났다. 중국 정부가 SMIC 키우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SMIC의 현재 역량은 화웨이를 백업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이제야 14나노 공정으로 화웨이의 AP칩인 ‘기린 710칩’을 만든 게 SMIC다. SMIC가 연말까지 7나노 공정 개발을 완수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지만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CN테크포스트와 같은 중국 매체에서는 SMIC가 반도체 장비의 노후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부족 등으로 첨단 공정 개발에 좀체 진척이 없다는 기사를 내놓고 있다. 미국 원천기술이 알알이 박힌 각종 장비의 중국 입고만 막아도 중국 반도체는 사실상 어렵다. 이런 난관 속에서 과연 SMIC가 얼마나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만약 시장 전망보다 SMIC가 훨씬 도약한다면 아마 TSMC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듯싶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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