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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내칼럼
[만파식적] 히틀러 생가




매년 4월20일이면 오스트리아 북부의 소도시 브라우나우암인에는 신나치주의자들과 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들이 몰려든다. 독일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그의 생가를 찾겠다며 순례길에 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독일 국경 인근에 있는 브라우나우암인은 1889년 히틀러가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난 곳으로 나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성지로 여겨진다. 히틀러 거리와 광장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지만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했다.

히틀러 생가는 17세기에 지어진 노란색 3층 건물로 과거 게스트하우스로 쓰였다. 히틀러는 이곳에서 태어나 다른 집으로 옮겼다가 3세 때 오스트리아 린츠로 이사를 갔다. 히틀러는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해 빈으로 향하던 중 생가에 들렀다. 이후 히틀러의 한 측근이 공공도서관으로 꾸몄다가 2차 대전이 끝난 후 집단포로수용소의 참상을 알리는 전시관으로 활용돼왔다. 1954년 이 건물이 개인 소유로 넘어가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나치 성지화를 막기 위해 매년 임대료를 지급하며 임시 박물관이나 도서관으로 사용했다.



히틀러 생가는 한때 위헌소송에 휘말렸다. 2016년 관공서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건물주가 거부하자 오스트리아 내무부는 강제압류 법안까지 마련했다. 건물주는 정부의 매입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공공이익을 위한 정당한 조치’라며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유권을 넘겨받은 정부는 한때 철거를 검토했으나 ‘부끄러운 역사도 보존해야 한다’는 역사학계의 반발에 부딪혀 미술관이나 공공기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해왔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68억원을 들여 히틀러 생가를 3년 내 경찰서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신나치주의자들이 경찰서 앞에서 히틀러 추모집회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생가에는 ‘평화·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파시즘은 다시 발호해서는 안 된다’는 경구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가의 역할이 ‘빅브러더’처럼 커지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소중히 새겨야 할 대목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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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17:35:36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