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 만나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가위, 바위, 보’ 하기 바쁘다. 한 사람이 ‘바위’를 내고 상대방이 ‘보’를 낸다. 원래는 거기서 게임이 끝난다. 그런데 새로 유행하는 게임을 잘 보면 둘 다 비겨야 게임이 끝난다. 서로 ‘주먹질(둘 다 ‘바위’)’을 하거나 ‘쌈질(둘 다 ‘보’)’로 끝나게 마련이다. 반가운 마음에서 내미는 악수 방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서로 엇갈릴 때 오히려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일이 생겨서 좋기도 하다.
여러 모임이 취소되고 연기된다. 그러나 친한 친구랑 둘이서 만나는 것은 ‘설마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약속을 잡는다. 만나면 반갑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도 하다.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하려니 마스크를 벗어야 하니까. 헤어지면 아쉽지만 안심되기도 한다. 밖을 나서면서 다시 마스크로 무장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행동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벗는다. 그러다가 정작 개방된 공간에 나오면 마스크를 쓴다. 뭔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고슴도치는 날씨가 추워지면 서로 다가간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몸에 난 뾰족한 가시가 서로를 찌른다. 그래서 멀리하면 또 추워진다. 이 때문에 ‘다가가고 멀어지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결국 잠잘 때는 몸에 가시가 나지 않은 머리를 맞대고 잔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다. 인간에게는 내향성과 고립주의가 작동하기 때문에 혼자 있고 싶다. 다른 한편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서로 모여 있고 싶어 한다. 같이 있다 보면 서로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아 다시 떨어지고 싶다. 요즘 우리네 행태를 보면 꼭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고슴도치 같다. 코로나19 확진자 수에 따라 ‘모였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9·11 사태는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꿨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한때 공유경제가 붐을 타고 우리 삶 곳곳에 파고들었다. 공유차량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의 시가 총액이 수백만 대 자동차를 생산하는 제조회사를 앞섰다. 코로나19가 터지자 이제 낯선 사람을 피하게 됐다. 차량을 공유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 행위로 비치게 됐다. 우버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다. 차도 겁나는데 낯선 이와 잠을 같이 잔다는 것은 더 위험하다. 사무실을 공유하는 위워크도 직격탄을 피해가기 힘들었다.
옛날에 나막신 장사하는 첫째 아들과 짚신 장사하는 둘째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비 오는 날이 되면 첫째 아들은 밖에 나가서 매출을 올리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짚신 한 켤레를 팔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어머니는 그런 둘째 아들 걱정에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해가 나는 날은 입장이 반대다. 둘째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어서 코빼기를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첫째는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반찬 투정이나 한다. 어머니는 또 시름에 잠긴다. 이러다 보니 어머니는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 해가 나면 해가 나서 걱정, 걱정에 파묻혀 산다.
여러분이 이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선 ‘비가 오면 첫째가 좋고, 해가 나면 둘째가 좋다’고 생각하라. 긍정심리학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면 심리적 효과는 확실하게 있다. 그보다 더 실질적 조치는 바로 협업이다. 비 오는 날은 두 아들이 다 같이 나가서 나막신을 팔고 해 나는 날은 두 아들이 힘을 합쳐 짚신을 팔면 된다. 그러면 그 집안 총수입은 대략 두 배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우버 택시를 외면한다. 그러자 우버이츠라는 택배 서비스에 전념한다. 이제 우버의 시가총액은 코로나19 전보다 더 올랐다. BC(Before Corona)는 우버 택시, AC(After Corona)는 우버이츠. WC(With Corona)에는 또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여러분, 이제 코로나 걱정은 더 이상 하지 말라. 대신 대비하라.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