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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밀레니얼을 위한 마을을 만들다” 홍동우 '괜찮아마을' 대표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 “경쟁이 없는, 괜찮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창업을 넘어 ‘창직 하는 사람(Job Creator)’들이 늘고 있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회사에서 찾지 못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개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직업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은 스스로 창직을 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과 산업 두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커리어를 꿈꾸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전하고자 한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늘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홍동우 대표.




지역마다 청년들을 위한 도시재생 등 창업 프로젝트가 유행이다. 한 때 산지 물건들을 홍보하며 판매하던 지역 마케팅에서 변화가 시작된 것.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다보니 청년들을 주목하게 되었고, 현지 출신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자리를 잡을 다양한 지원 사업이 생겨났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사례로 목포의 ‘괜찮아마을’을 꼽는다. 2018년도에 만들어진 이 공간은 삼포 세대에 빠진 청년들의 미래를 고민하던 홍동우, 박명호 대표가 만들었다. 목포의 옛 여관 건물을 20년간 무상 임대해주겠다는 한 시인의 제안에서 시작했다.

입소문을 듣고 청년들이 모여 어느덧 일하는 사람 포함 30여명의 마을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좀 못해도, 늦어도, 당장 뭔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창업을 한 멤버들까지 생겼다고. 이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홍동우 대표를 만나보았다.

청춘과 인생에 대한 고민

-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여행만 다녔다고?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싶은 직업도 없었다. 대학에 가면 고민이 해결될 줄 알았고 성인이 되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취업 잘 된다고 해 ‘기계공학과’를 갔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 전공 공부는 어땠나?

“하고 싶은 게 뭔지 답을 찾지도 못했는데 전공 공부가 재미 있을리 없었다. 선배들이 들으라는 수업을 선택하고, 취업 관련 조언들을 노하우처럼 듣고,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는지 문법처럼 외우고. 성인이 된 이후 이런 짜여진 것 보다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났다.

“내가 뭘 하며 살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한 달간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한 후 작은 스쿠터를 구입했다. 그걸 타고 전국으로 여행을 다녔다. 대학 입학 후 첫 방학 때의 일이다. 그렇게 여행을 다녔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 아무대서 텐트치고 자고,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후에는 아예 휴학까지 하며 여행을 다녔다.”

- 여행 관련 책을 쓴 계기는?

“제대 후 캐나다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어떻게 갈까 하던 중 마침 가이드북 작가를 모집한다는 출판사의 글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과 써온 글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했는데 운 좋게 합격을 했다. 캐나다를 왕복 1회 차로 운전해가며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캐나다 이후에는 독일 등 다른 나라들도 다녔다.”

- 그러다 어느 순간 지치게 되었다고?

“여행을 일로 한다는 게 언젠가부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일상이 있어야 여행도 의미 있는 법이더라. 여행만 다니다 다시 일상을 꿈꾸게 되었다. 그때 막연히 내 브랜드로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창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외국을 다니며 자연스레 공유경제에 관심이 생겼다. 캐나다나 유럽에서 자전거나 자동차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굉장히 신기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대중화됐지만 2010년 당시에는 생소한 문화였다. 이런 시스템을 한국에서 사업화 해보고 싶었다.”

시간 날 때마다 다녔던 국내여행. 여행을 하며 많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진 맨 왼쪽이 홍 씨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창업의 세계

- 스쿠터 공유로 창업을 시작했다.

“2011년에 창업을 했는데 그 때도 대학생 신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공유경제가 활성화 될 거라는 벅찬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소유가 아닌 공유를 통해 도시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 신분이었고 수중에 돈은 거의 없었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아이템을 찾아야 했고 스쿠터로 정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스쿠터를 두 대를 구입했다.”

- 어떤 형식으로 홍보를 했나?

“두 대를 사서 어설프지만 웹페이지를 만들어 스쿠터 사진을 올렸다. 서울 전역 어디서든 스쿠터 대여 및 반납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거리가 멀면 비용을 좀 더 받고 가까우면 덜 받았다. 그러다 점점 스쿠터가 10~12대로 늘었고, 스쿠터를 이동할 화물 트럭까지 구입하게 됐다.”

- 돈도 굉장히 많이 벌었다고?

“보통 일주일 한 대 기준 40만원정도 비용을 받았다. 그러니 10대가 풀가동 되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학생 신분으로 당시에 정말 큰돈을 벌었다. 쉴 새 없이 일하다 보니 2년도 채 안 돼 억대 비용을 벌수 있었다. 그 돈으로 해방촌 쪽에 작은 땅도 구입했다.”

- 하지만 곧 한계에 다다른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유경제를 추구했던 원래의 목적과는 많이 멀어져있었다. 렌탈 업 하는 사람으로 일하는 게 전부더라. 사업적으로 의미 있는 확장도 하지 못했다. 방송 프로그램 소품용 렌탈 까지 연락이 오다보니 잠시도 쉴 틈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점점 지쳐갔다.”

- 사람 때문에 힘든 지점도 많았다고?

“그렇다. 고객들이 점잖기만 한건 아니었다. 화가 나있는 분들도 많았고 그러다보니 종종 다툼도 있었다. 심적으로 힘들어지니 계속 해야 하나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민 끝에 돈 버는 걸 포기하고 시간을 벌기로 했다. 매일매일 빌려주는 시스템에서 장기 렌탈로 바꿨다. 약정기간 6개월 이상, 가격은 저렴하게 해주다보니 드디어 내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 하지만 쉬지 않고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매출은 반의 반으로 줄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다른 시도할 것들이 생겼다. 이태원에서 카페도 열었다. 예상하셨겠지만 장사는 잘 안됐다. (웃음) 해방촌에 산 땅에 조그만 집을 지으려 했던 것도 실패로 끝났다. 이후 여행 사업 하면서도 돈을 많이 까먹었고. 그러면서 스쿠터 사업 때 번 돈을 다 써버렸다.”

- 여행 사업은 어떤 콘셉트였는지?

“여행 사업은 2015년부터 시작했다. ‘익스퍼루트’라는 이름의 국내 전문 여행사였다. 렌탈 사업을 최소화 한 후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겸 스쿠터로 국내 여행을 자주 다녔다. 다니다보니 로컬의 좋은 지역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누구나 인생의 한 번은 전국 일주를 한다.’는 슬로건으로 여행사를 만들었다. 그때 3년 정도 전국을 돌며 다양한 청년들을 만났다.”

- 여행사는 왜 적자가 났을까?

“전국을 돌며 지역별 참가자들을 모집하는 형태였다. 주로 2~30대 청년이 참가자였고. 밤마다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각자의 고민이 굉장히 많음을 알게 됐다. 진로, 취업, 사회생활 등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그래서 재방문율은 굉장히 높았는데 경비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내 경비를 포기하고 적자를 보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청년들과 함께하는 엄청난 경험은 얻었지만 통장 잔고는 0원이 됐다.”

제주도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한량유치원’. 슬로건 하나에 많은 청춘들이 몰렸다.


청년들을 위한 리트릿 커뮤니티

- 이후 제주도로 향했다.

“스쿠터 2대로 시작해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다시 원점이 됐다. 여행사 사무실을 정리하고 받은 보증금으로 무작정 제주도로 떠났다. 어딘가 정착해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었다. 당시 현 공동대표인 박명호 대표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한량유치원’이라는 걸 만들었다.”

- 박 대표와의 인연은?

“예전에 스쿠터를 빌렸던 고객이었다. 이후 나와 결이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다가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그 친구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두루 다녀본 경험이 있어 내가 실수하는 부분들을 많이 수습해 주곤 한다.”

- ‘한량유치원’ 어떤 프로그램인가?

“나도 박명호 대표도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다 정리하고 한 템포 쉬어야 할 시점이었다. ‘장래희망은 한량입니다.’ 라는 슬로건으로 오래된 제주 게스트 하우스를 7주, 49일간 빌렸다. 그런데 입소문을 타고 온 사람들로 670박을 채웠다. 이 슬로건 하나에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 것이다. 덕분에 재기할 계기가 됐다.”

- 이후에는 치앙마이로도 향했다.

“‘한량유치원’이후 ‘청년들을 위한 리트릿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장소가 꼭 제주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약기간이 끝난 후 바로 태국 치앙마이로 떠났다. 저렴한 외국에서 커뮤니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서다. 한 달 정도 거주하며 숙소 등 여러 가지를 알아봤는데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다.”

- 또 다른 문제, 어떤 것이었나?

“치앙마이의 경우 체류비는 저렴한데 시간이 문제였다. 왕복 4일을 길에서 써야 하는데, 청년들에게 그만큼의 여유가 있을리 만무했다. 당시 치앙마이가 디지털 노마드 성지로 각광받던 때라 매력적이라 생각했는데 그 지점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결국 영어권 사람들에게만 편리한 구조다 싶었다. 그러다보니 커뮤니티에 대한 지속 가능성도 의문이 들었다.”

사진4. ‘한량유치원’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박명호(오른쪽)공동대표와 홍씨.


20년 무상임대 제안, 결국 목포로

- 결국 정착지인 목포로 선택한 이유는?

“‘가깝고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한량유치원’에 오셨던 분 중 강제윤 시인이 계셨는데 목포를 제안한 게 떠올랐다. 본인이 목포의 ‘우진장’이라는 빈 여관 건물을 매입했는데 거기를 ‘한량유치원’으로 써보라는 제안이었다. 20년간 무상으로 빌려주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서 치앙마이를 정리하고 바로 목포로 가 임대인과 이야기를 나눈 후 이 곳에 자리 잡기로 최종 결정했다.”

- 어떤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모았나?

“조금씩 동료를 모으며 놀러오라고 사람들을 불렀다.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여행이 자연스러웠다. ‘놀먹사(놀고먹는 사람들)’라는 테마로 2박 3일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금요일 밤 KTX를 타고 온 후 주말에 목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투어를 다니는데, 현지의 생생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보니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맥주 무제한 제공도 한 몫 했다.”

- 오래된 여관이면 수리도 필요했겠다.

“그렇다. 약간의 리모델링은 필요했다. 최소한 숙소처럼은 써야 하니까. 당장 목돈이 없었기에 여기저기서 빌려 부분 공사를 진행 했다.”

-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여행에 대한 만족도가 커졌고 목포에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때 마을에 대한 구상을 조금씩 가지기 시작했다. 현 ‘괜찮아마을’의 시작이었다.”

- 행정안전부에서 6억의 사업비를 땄다고?

“‘괜찮아마을’을 기획하던 중 행정안전부 주관 용역 사업으로 ‘시민주도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공고가 나왔다. 방치된 유휴 공간들을 활성화 시키는 프로젝트였다. 그걸 지원할 시점에는 ‘우진장’ 포함 총 세 개의 공간을 확보한 상태였다. 매입 후 임대한 3개의 공간을 통해 청년들이 공감할 공동체를 만들겠다며 ‘괜찮아마을’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첫 베이스캠프로 시작한 ‘우진장’. 강제윤 시인이 20년간 무상으로 임대해줬다.


실패해도 괜찮은 마을을 만들다

- ‘괜찮아마을’, 무엇을 지향했나?

“경쟁이 없었으면 했다. 민주적이고 협동하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마을이 되길 바랐다. 결과적으로 행정안전부 사업으로 선정돼 반 년간 프로그램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1기, 2기 총 60명이 6주간 지내다 갔다. 그런데 남겠다고 한 친구들이 30명이나 됐다.”

‘괜찮아마을’ 프로그램을 함께한 친구들. 많은 친구들에 목포에 남았다.


- 그들은 남아서 어떤 생활을 하며 지냈는지?

“취업, 창업 등 각자가 다양한 형태로 고민하며 방식을 찾아갔다. 그 중 몇 명은 공간을 차리기도 했다. ‘최소 한끼’와 ‘세종집’이라는 식당, ‘춘화당’이라는 게스트 하우스, 춘화당 옆 ‘춘화당 한약방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 등 다양해졌다. ‘목포의 상실’이라는 바를 운영하는 친구도 있다. 중간 중간 나가기도 하고 또 새로 들어오기도 하며 전체 30명 정도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 이 곳에서의 생활은 좀 넉넉한가?

“목포 원도심에서는 방 3개 거실하나 있는 정말 좋은 바다 뷰 아파트가 월세 60만원이다. 4명이서 살면 1인당 15만원씩 내면 되는 것이다. 한 달에 30만원 정도만 있으면 먹고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서울에서는 고시원이 40만원 대 창문 있는 작은 원룸이 60만원 가까이 된다. 삶의 질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 살아보며 그들은 어떤 것들을 느꼈을까?

“서울에서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나? 값 비싼 방과 식사에 수많은 돈을 쓰지만 퀄리티 낮은 생활을 하며. 여기서는 덜 일해도 적은 비용이 들기에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식당, 카페, 바, 게스트 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함께 성장한다는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

- 공동체라는 단어, 요즘은 굉장히 낯설다.

“부모님 세대는 돌아갈 공동체라는 게 있었다. 힘들면 돌아갈 고향이 있었고 ‘응답하라 1988’처럼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청년 세대들은 돌아갈 시골도 없고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함께 나눌 사람들도 없다. 실패를 해도 엄마처럼 안아줄 공동체가 없는 것이다. 뒷걸음질 쳐도 될 믿을 구석이 없다. 밀릴 수 없으니 버텨야 하고, 그래서 더 힘든 것이다.”

- 결국 청년들이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의 개념인걸까?

“사실 우리를 도시 재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건 후순위다. 지치고 힘들 때 비빌 언덕 없는 청년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공동체 생태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게 고향이라면 고향일 수도 있겠다.”

- 창업을 안 한 청년들은 어떤 일을 하나?

“젊고 유능한 친구들이 모여 있다 보니 그 이유만으로도 지역에서 일이 많이 들어온다. 사실 지금껏 지역에는 플레이어들이 없어 문제였지 않나. 재능 있는 사람 수십명 있으니 일이 들어오고 벌이도 생긴다. 점점 다양한 형태로 일을 늘려가고 있고. 그러다보니 청년들이 만든 자생적 마을이라는 소재를 언론에서도 주목했던 것 같다.”

목포에 남은 청년들은 하나 둘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종집


목포에 남은 청년들은 하나 둘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춘화당 게스트하우스


목포에 남은 청년들은 하나 둘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최소한끼


지속가능성과 확장에 대한 시도

- 건물을 5개나 확보한 이유는?

“처음에는 동네 주민분들께서 그냥 쓰라는 분들이 많았다. 사실 이곳은 꽤 많은 공간이 비어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걸 그냥 쓰는 건 옳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향후 젠트리피케이션이 될 경우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 아직은 너무 이른 걱정 아닌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여행을 다니며 다른 지역에서의 실패 사례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 아직은 이르지만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예전에 가게를 직접 해본 경험도 일정 부분 작용했던 것 같다.”

- 투자자를 통한 매입 후 임대의 형태다.

“빈집이 많다 보니 매매로 내놓은 곳도 많았다. 잘 다녀보니 저평가 되어 있는 건물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자금이 여의치 않았기에 도움이 필요했다. ‘우진장’을 임대해준 강제윤 시인을 통해 만난 지인 분들에게 우리의 사업을 설명하며 매매를 해달라고 제안했다.”

- 어떤 조건들을 제안했나?

“우리가 투자 메리트를 많이 드릴 수는 없다. 부동산 가치도 서울과는 다른 기준이고. 건물 매입 후 우리가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단 재무적 가치가 아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임팩트 투자’의 관점으로 봐 달라 말씀 드렸다. 이 부분에 동의 해준 분들이 건물 매입을 해주셨다.”

-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예정인가?

“호텔, 코워킹 스페이스, 카페 등 다양한 형태로 구상중이다. ‘우진장’을 숙소로 쓰고 있긴 하지만 공간이 부족한 상태다. 그래서 옛 병원 건물을 매입한 곳을 호텔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다.”

오래전 문 닫은 레스토랑 ‘로라’ 건물. 이 곳에 사무실과 레스토랑 오픈을 새롭게 준비 중이다.


오래전 문 닫은 레스토랑 ‘로라’ 건물. 이 곳에 사무실과 레스토랑 오픈을 새롭게 준비 중이다.


더 큰 성장을 위한 비전과 미래

- ‘공장공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어떤 일을 하나?

“총 13명의 직원이 있다. 기획 일을 주 업무로 하는 기획사다. 문화나 로컬 분야를 주로 많이 하고 있다. 빈 공간을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뜻도 있고, 비어있는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의미도 있다. 돈을 잘 벌어 우리 조직원들이 잘 먹고 잘 살고, 더 많은 직원을 뽑는 게 목표다.”

- ‘괜찮아마을’ 업무는 부서 개념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괜찮아마을’이 ‘공장공장’에 큰 도움이 됐다. 서울에서 경력을 잘 쌓아 온 유능한 친구들이 오다보니 그 친구들을 채용할 수 있는 인력 풀이 됐다. 덕분에 지금은 동시에 6~7개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바쁜 회사다.”

- ‘괜찮아마을’과 선순환 관계를 쌓아야겠다.

“엄밀히 말하면 ‘괜찮아마을’은 우리의 프로젝트로 시작했고, 지금은 업무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를 비영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역에서 수익이 나야 더 좋은 친구들이 목포를 찾을 테니까. ‘공장공장’에서도 향후 커뮤니티 사업으로 키워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 관점으로 공동체에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당장의 수익은 없지만 다음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 ‘괜찮아마을’로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

“이미 투어나 강연, 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 중이다. 그리고 다양한 니즈의 청년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가이드가 담긴 툴킷도 있다. 이런 것들을 접목시킬 수 있는 곳이 많을 것이다.”

- 고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렇다. 당연히 우리도 스타트업이고 자주 고전하며 쉽지 않은 지점들이 많다. 이게 쉬웠으면 벌써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겠나. 너무나 다양한 마음들을 모은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그래도 일단 우리는 어느 정도 해결해나는 중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이곳에서 3년째 살고 있지만 심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잘 살고 있다.”

- 코로나19 영향은 없었나?

“최근에 우리도 코로나19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남도는 타격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연초에는 우리도 꽤 힘들었다. 수많은 오프라인 행사가 취소됐고, 선택의 기로 까지 간 적도 있었다. 다행히 5월부터 회복세로 접어드는 중이다.”

- 올해의 계획은?

“진행 중인 ‘공장공장’ 일들을 훌륭하게 잘 마무리 하고 싶다. 그리고 ‘괜찮아마을’의 브랜드들이 잘 안착하고 자생 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 공동체 모델을 다양하게 확장해보고 싶다. 오프라인 측면은 호텔, 레스토랑, 코워킹 스페이스 등으로의 인프라 확장, 온라인으로는 우리의 공동체 모델을 적용해 수익화 해보고 싶다.”

- 홍동우 대표 개인의 목표는?

“회사의 목표가 곧 나의 목표인 것 같다. 다행인지 아닌지 분리가 잘 되질 않는다.”

얼마전 KBS ‘다큐멘터리 3일’에 방송된 ‘괜찮아마을’. 밀레니얼의 새로운 고향이 되길 꿈꾼다. 사진출처: KBS ‘다큐멘터리 3일’


원부연.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 객원기자. 전 광고 기획자에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로 창직 후 술집, 극장, 살롱 등 서로 다른 9개의 공간을 런칭했다.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퇴사 말고, 사이드잡> 세 권의 책을 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원부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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