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금융투자회사가 고난도금융상품을 만들어 팔 때, 판매대상을 일반투자자와 전문투자자로 명확히 나눠 각 대상에 맞는 상품을 제조·판매하는 것이 의무화된다. 아울러 제조사는 새로 출시하는 고난도상품의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을 미리 입증해야 하고, 판매사는 고난도상품 판매를 위해서는 대표이사 확인과 이사회 의결까지 거쳐야 한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협회는 최근 이같은 내용의 ‘고난도금융투자상품 제조 및 판매에 관한 표준영업행위준칙’을 마련해 회원사들에 안내했다. 표준준칙은 DLF사태로 불거진 고난도상품의 문제점을 불식하기 위해 금융투자협회가 금융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만든 모범규준이다. 자율적으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시행령이 위임하고 있어 사실상 강제력을 지녔다. 특히 금융당국의 감독 및 제재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금융투자사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고난도상품은 잇따른 금융사고 이후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가 새로 도입한 개념으로 상품구조가 복잡하고, 최대손실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파생결합증권과 파생형 펀드(신탁·일임) 등이 여기 해당한다.
표준준칙에 따르면 판매사와 제조사는 고난도상품 설계 단계에서 목표시장을 명시해야 한다. 목표시장은 △고객유형 (일반투자자·전문투자자) △지식과 경험(상품 종류·특성·구조에 대한 이해도 및 관련 투자경험) △손실감내능력(원금 대비 감내 가능한 손실수준) △고객의 위험추구 성향(투기·균형·보수) △투자기간(단기·중기·장기) △보유 가능 기간(중도 환매·만기 보유) 등을 기준으로 정한다. 사전에 목표시장을 정하지 않거나 목표시장 외에는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금지된다.
금융투자회사 경영진의 책임을 크게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제조사와 판매사 모두 이사회가 마련한 금융투자상품 영업행위준칙에 따라 운영체계를 마련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통제ㆍ관리하도록 규정하고, 특히 판매사는 고난도상품의 판매 여부를 사내상품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 대표이사 확인을 거쳐 이사회 의결로 정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업무과정별 통제ㆍ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충분한 경험과 능력을 갖춘 인력 조직 확충도 의무화했다. 예를 들어 제조사는 금융 관련 석사 학위 이상이나 파생결합증권 등 금융투자상품 설계·개발 경력 2년 이상, CFA, FRM, 투자자산운용사 등의 자격증을 갖춘 인력을, 판매사는 파생결합증권 및 파생상품의 경우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집합투자증권의 경우 펀드투자권유자문인력·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이 관련 업무를 맡아야 한다.
제조사와 판매사 간 금융투자상품 내용(구조, 위험성, 특성 등), 목표시장, 상품승인절차 및 판매전략, 금융투자상품 테스트, 상품 판매 후 민원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원활한 정보교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회사별로 전담직원 지정, 전산시설구비 등과 같은 적절한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밖에도 제조사는 상품 제조 과정에서 금융시장 요인별로 발생 가능한 손실위험에 대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을 실시하고, 제조 관련 비용구조가 목표시장에 적합한지와 투명한 수수료 부과체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 등을 선제점검해야 한다.
판매사는 집합투자증권의 판매사의 경우 집합투자업자의 집합투자재산 운용에 개입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아울러 판매회사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이후 목표시장 및 판매전략 설정 등의 운영 실태를 정기적(연 1회 이상)으로 점검해야 한다.
협회와 금융당국은 이번 모범규준 마련을 위해 금융투자사들의 의견수렴 작업을 거쳤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소비자보호의 대책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제조사의 경우, 신상품을 만들 때 금융시장 환경변화에 따른 영향을 평가하거나 비용구조가 목표시장에 적합한지 등을 증명할 역량을 갖춘 곳이 많지 않다”며 “이렇게 무거운 의무를 부과하면 신상품 출시가 씨가 마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판매사가 금융상품 판매를 위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면 손실 가능성이 적은 보수적인 상품만 제한적으로 판매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번 대책이 투자로 손실을 본 소비자는 줄일 수 있겠지만, 저금리 기조에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해 소비자 만족을 높이는 기회를 차단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태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돼 금융 사고는 은행이 치고, 피해는 증권사와 운용사가 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DLF 사태의 원인은 파생상품 구조의 복잡성이 아니라 기초지수의 변동성 확대와 판매를 맡은 은행의 설명 부족”이라며 “몇몇 상품이 기초지수 변동으로 문제가 됐다고 파생상품을 일괄적으로 고난도 상품으로 규정하고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책임을 증권사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준칙 중 일부는 다음 달 19일부터 시행되며, 나머지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시행된다. 이 준칙 시행 이전에 제조하거나 판매한 금융투자상품에 대하여도 이 준칙 시행일 이후 추가 제조 또는 판매하는 경우에는 이 준칙이 적용된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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