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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누가 이득을 보는가

<126>리더의 기본임무

인사철엔 승진 대상자 관련 투서 많지만

이익 보는 사람이 했다는 단정은 위험

리더는 어설픈 추론보다 팩트 체크 후

감정이 아닌 합리적으로 판단 내려야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어느 여름날에 있었던 일이다. 며칠째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도 않고 비가 내린다. 밤이 깊어질수록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더 세차게 내린다. 드디어 집 담장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린다. 옆집 영감이 잠을 자다 그 소리에 벌떡 깬다. “여보게, 자네 집 담장이 무너졌어. 지금이라도 당장 수리하게나.” 눈을 비비며 일어난 청년은 “아이, 비도 오고 졸린데 내일 날 밝으면 고쳐볼게요”라고 말한다. “아니 이대로 놓아뒀다가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래.” “에이 설마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과연 도둑이 귀중품을 다 훔쳐갔다. 중국의 철학서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러분이 청년이라면 그 도둑이 누구라고 의심하는가. 설마 이웃집 영감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감에게 도난 사실을 알리지도 않겠는가.



옛날에 임금님이 한 분 계셨다. 어느 날 수라상에 맛있는 고기가 올라왔다. 먹으려는 순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긴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당장 주방장을 불러오너라.” 그리고는 취조에 들어간다. “이실직고하라. 너는 어이해서 머리카락을 고기에 넣었느냐.” “폐하, 제가 죽어 마땅한 이유는 한 가지도 아니고 무려 세 가지나 되옵니다. 첫째, 돼지를 잡을 때 그 긴 머리카락을 보지 못한 죄입니다. 둘째, 썬 고기를 꼬치에 끼울 때 머리카락을 떼지 못한 죄입니다. 셋째, 돼지를 불에 구울 때 그 긴 머리카락을 태우지 못한 죄입니다. 혹시 저를 미워하는 자는 없는지 헤아려 주십시오.” 임금님은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에 그 요리사의 후계자를 불러서 문책한다. 자백을 받고 그자를 처형한다. 한비자에 나오는 ‘유반(有反)’ 이야기다.

고대 로마에서의 일이다. 재산이 엄청 많은 부자가 살해당한다. 제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부자의 아들이다. 재판이 열린다. 그 아들의 사촌들이 나와서 이렇게 증언한다. “저 애는 평소 아버지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미워 죽겠다고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 아들이 죽으면 숙부는 경매에서 그 부자의 농장을 헐값에 사게 된다. 과연 누가 그 부자를 죽였을까. 아니 어떻게 누가 죽였는지를 알 수 있을까. 그 아들은 변호사를 잘 쓴 덕에 처형되는 것을 면한다. 로마의 위대한 스토아 철학자 키케로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쿠이 보노(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아들이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얻는 이득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히려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나면 정말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장맛비에 옆집 담장이 무너진 것을 지적한 영감은 과연 도둑질의 진범일까. 아마도 아닐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정말 도둑질할 마음이 있었다면 조용히 해치우는 것이 더 나았을 테니까. 오지랖 넓게 나댄 죄가 있다면 몰라도. 요리사가 해임되거나 처형되면 그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머리카락을 투입했을 것이다. 승진 철에는 승진을 앞둔 사람에 관한 각종 투서가 들어간다. 조사해보면 사실인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투서를 넣는 사람은 대개가 같은 승진 대상자들이다. 조직구성원들이 승진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승진하면 수많은 혜택이 돌아가니까. 경쟁자를 조심하라.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이다.

‘쿠이 보노’는 우리에게 의심의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그 적용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악행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자가 그 일을 도모했다고 단정하다가는 생사람 잡을 위험도 있다. 온난화가 지속되면 해수면이 올라가게 된다. 빙하가 녹을 테니까. 그러면 바다 수위가 올라가 최대 이익을 보는 존재는 누굴까. 그렇다고 물고기가 기후변화를 주도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어설픈 추론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한비자의 유반에서 처형당한 요리사 후계자가 마음에 계속 걸린다. 팩트를 체크한 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리더의 기본 의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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