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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급 재산 열람하면 처벌"... 총리 '다주택 처분' 지시에도 부처들 한달째 '팔짱'

"다주택 현황 조속 파악" 한달전 총리 지시에도

기재부 등 대다수 중앙부처, 현황 조사 안나서

국장급은 재산공개 대상 아니라 파악방법 없어

추가지시 계획 없는 권고인데 "공식 문서 안와"

승진 포기, 갓 승진 공무원은 불이익 걱정도 無

홍남기·강경화·박영선 등 8명은 장관도 다주택

홍남기(왼쪽부터) 경제부총리, 정세균 국무총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에게 연말까지 집을 팔라고 경고한 가운데 한 달이 지나도록 대다수 정부 부처가 다주택자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처분 권고 기준이 된 일반직 2급 공무원(국장급)의 경우 법적으로 재산 사항을 열람할 수 없는데다 승진을 앞두지 않은 공무원들까지 별도 재산 공개로 유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 총리의 다주택 처분 발언이 자칫 ‘상징적 권고’로만 그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6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국세청·외교부·통일부·국민권익위원회·인사혁신처·법제처 등 대다수 중앙정부부처는 2급 이상 공무원들의 다주택 보유 현황을 별도로 파악하지 않았다. 정 총리가 지난 7월8일 고위공직자 다주택 처분 지시를 다급하게 내렸던 점을 감안하면 정부 부처들의 대응은 상당히 느린 셈이다.

정 총리는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고위공직자들이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다면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며 “각 부처는 ‘고위공직자 주택 보유 실태’를 조속히 파악하고 다주택자의 경우 하루빨리 매각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아직까지 총리 지시에 머뭇거리는 것에 대해 정부 부처들은 “공식 문서 등을 통한 구체적인 추가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해명했다. 정 총리가 구두로만 경고해 ‘자율적으로 관망 중’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정 총리는 애초부터 추가 지시를 내릴 계획으로 한 발언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총리실 관계자는 “정 총리의 지시는 ‘권고’이고 총리실이 통계적으로 고위공직자 다주택 처분 현황을 파악할 계획은 없다”며 “각 부처장들이 연말까지 자발적으로 이행하기를 기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들이 고위공직자 다주택 현황 파악에 적극 나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국장급 공무원의 경우 개인 재산 사항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무원들은 모두 재산을 신고하게 하는데 이 중 관보를 통해 재산을 공개하는 대상은 실장급인 1급 공무원 이상으로 규정한다. 2~4급 공무원 재산 등록 사항을 공직자윤리위원회나 기관장의 허가 없이 열람할 경우 누구라도 징역 1년 이하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기관장이 허가할 수 있는 범위도 범죄수사, 비위조사, 재판상 필요한 경우 등으로 제한한다. 국장급 공무원들의 다주택 여부를 따로 조사하는 방법도 법적 근거가 없어 위법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A중앙부처의 한 실장급 공무원은 “1급 이상은 재산이 다 공개되니 다주택 처분 여부를 연말까지 확인할 수 있지만 국장급은 공직자윤리법의 처벌 조항이 굉장히 강해 조사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인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행정·기술·관리운영직과 일반임기제 1·2급 공무원 수는 1,245명이다. 검찰·경찰·소방 등 특정직과 별정직 고위공무원까지 더하면 그 수는 2,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 시점에서 누가 다주택자인지 파악하지 못하면 정 총리가 제시한 연말에도 다주택자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누가 팔고 누가 팔지 않았는지 알 길이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장관 8명은 아예 본인들도 다주택자다. 이중 홍 부총리는 최근 경기 의왕 주택을 매도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장급들과 그 밑 공무원들의 다주택 처분을 유인할 유일한 방법은 ‘암묵적인’ 승진 제한이 꼽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모든 공무원의 승진 때마다 인사 검증을 이유로 재산 사항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승진을 염두에 둔 공무원들은 이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 역시 더 이상의 승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장급이나 정년을 앞둬 노후 대비가 필요한 공무원, 승진한 지 얼마 안 돼 다음 승진까지 기간이 많이 남은 공직자들에게는 큰 의미 없는 압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B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승진에 대한 기대가 있는 국장들은 그래도 자발적으로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으로 집을 내놓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고 ‘각자 알아서 하겠지’ 정도의 분위기만 있다”고 전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연합뉴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고위공무원들이 다주택 문제를 정리 중이라고 밝힌 중앙 부처는 부동산 정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뿐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2주택 문제를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같은 달 28일 다주택을 처분하지 않은 4급 이상 공무원은 승진 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다만 이들도 법률적 제한을 어떻게 피해 재산 현황을 파악하고 조치한다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윤경환·한재영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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