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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도시] 4,200개 루버로 '정중동'의 미학 담은 '이대서울병원'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이대서울병원’ 전경. 4,200여개의 루버로 건물 전체를 감싸 마치 바람이 흐르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사진제공=윤준환 사진작가




‘정중동(靜中動)’. 4,200여개의 루버로 둘러싸인 덕분일까.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이대서울병원’은 고요한 가운데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바람이 흐르는 것처럼 정중동의 모습을 한 이대서울병원은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고 묵직하면서도 가벼운 인상을 준다. 병원 같지 않은 유려한 외관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사실 이대서울병원은 그 어떤 병원보다 병원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한 건축물이다.



이대서울병원 건물을 감싸고 있는 메탈글라스 루버. 층마다 2.5도씩 각도를 달리해 물결치는 듯한 흐름을 표현했다. 일사량을 조절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외부에서 실내가 잘 보이지 않게끔 하는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도 갖췄다. /사진제공 = 윤준환 사진작가


<아름다움과 기능성 겸비한 루버와 중정>

루버로 일사량 조절해 에너지 절감

효율적 병동 배치 위한 ‘ㅁ자’ 중정



이대서울병원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수직 ‘루버(louver·폭이 좁은 널빤지 형태의 차광판)’다. 층마다 2.5도씩 각도를 달리해 설치된 루버는 건물 전체가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 자칫하면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육중한 유리 건물을 수천 개의 루버로 감싸면서 무게감을 덜어내고 부드러움을 더한 것이다.

루버는 건물의 멋을 더할 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능적인 측면도 갖췄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비스듬히 설치된 루버 덕에 일사량을 조절해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이대서울병원에는 유리와 유리 사이에 알루미늄 패브릭을 넣어 접합한 특수 루버가 사용됐다.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보기 힘들게 한 것이다. 조망권을 해치지 않는 동시에 내원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 다른 건축적 특징은 건물 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중정(中庭). 이 중정 또한 병동의 효율적 배치를 위해 고안됐다. 보통 1,0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의 경우 지상 20~23층 높이로 지어진다. 이대서울병원이 들어선 마곡지구는 지구단위 계획상 건물 높이와 수평 길이 제한이 까다롭다. 특히 병원은 일반 건물보다 층고가 높은 탓에 최대 10층까지밖에 건물을 올릴 수 없고 수평으로도 3층 이하는 150m, 4층부터는 100m 이하로 그 길이를 제한했다. 정해진 대지 조건 내에서 병동을 최대한 기능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안을 물색한 끝에 중정 안(案)이 채택됐다. 가운데 중정을 두는 ‘ㅁ’자 구조를 택함으로써 병동과 병동 간의 거리를 최대한으로 넓히고 각 병실의 채광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건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답답하고 어두울 수도 있다는 중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정의 일부 구간을 과감하게 걷어내 바람길을 열고 채광을 극대화했다. 중정에도 건물 외관에 있는 것과 같은 수직 루버를 설치해 건물 전체에 통일성을 줬다.



이대서울병원의 중심 공간인 ‘아트리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트여있어 개방감이 높다. 외래부와 중앙진료부를 분리해 동선의 효율성도 높였다. /사진제공=윤준환 사진작가


<어떤 병원보다 병원의 기능 강조>

마감재로 입원·내원환자 동선 분리



전염병 대비위해 별도 통로 만들어

건물에 들어서면 이대서울병원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아트리움’이 내원객을 맞이한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에 달하는 높이에 폭은 15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공간은 꼭대기까지 트여 있고 유리로 된 천장에서는 자연광이 들어와 흡사 교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직선적인 외관과 달리 부드러운 곡선이 주로 쓰였고 크림색과 원목 등 따뜻한 색감과 은은한 조명이 사용돼 내원객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끔 했다.

이 아트리움 또한 내원객의 동선을 최적화하기 위한 기능적 설계의 일환이다.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외래부와 중앙진료부를 명확히 분리했다. 입원 환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중앙진료부와 외래 환자가 드나드는 외래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설계해 감염 우려를 줄이고 입원 환자의 프라이버시도 보호한 것이다. 또 두 공간에 사용되는 마감재를 달리해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내원객의 이동이 많은 외래부는 유리와 목재를 사용해 투명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검사실이나 수술실이 위치한 중앙진료부에는 곡선형에 따뜻한 색감의 석재를 주로 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전염병에 대비하기 위한 설계도 눈에 띈다. 이대서울병원의 설계 작업이 완료되고 공사에 돌입한 지난 2015년 당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이대서울병원은 전염병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설계변경이 진행됐다. 대표적인 곳이 ‘응급부’다. 중증환자와 경증환자로 구분하는 기존 공간구성 틀에 호흡기계 의심환자를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다른 환자와 직원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내로 들어오기 전 별도의 출입문으로 응급실 내의 음압병실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구축한 것이다.

이대서울병원의 가장 큰 특징인 ‘중정’. 중간층을 뚫어 중정 안에서도 외부를 바라볼 수 있게 했고, 외부에서도 중정을 바라볼 수 있다. /사진제공=윤준환 사진작가


<‘변화와 성장’의 정체성을 담다>

국내 최초 기준병실 3인실 체계 구축

의료환경 변화 발맞춰 증축까지 염두

이대서울병원은 이화여대의 의대 건물과도 연결됐다. 건물 곳곳에 변화를 이끄는 이화의 개척정신이 묻어나는 이유다. ‘변화와 성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이대서울병원은 의료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추후 증축이 이뤄질 것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고 한다. 국내 최초로 기준병실 3인실·중환자실 1인실이라는 새로운 병실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병원 내부에 조성된 ‘헤리티지 월’도 이화여대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트레버틴’이라는 대리석이 사용된 곡선형 벽면은 대리석의 크기가 상층부로 갈수록 작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성곽을 쌓듯 이화여대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올린다는 의미를 담았다. 헤리티지 월에 새겨진 세 개의 음각은 이화여대를 상징하는 배꽃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의대로 쓰이는 별동 건물은 이대서울병원과 비슷한 조형 개념을 적용하되 이화여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디자인과 자재를 사용했다. 루버가 갖는 수직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유리와 금속이 아닌 이화여대 캠퍼스 건물을 연상시키는 화강석을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의대 건물에도 이대서울병원에 있는 것과 같은 중정이 있다. 이대서울병원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각종 건축상을 수상했다. 2019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9 대한민국녹색건축대전 최우수상에 이어 지난달 25일에는 제38회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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