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허의 난타장이 돼버린 미국 대통령선거를 보면서 각국은 대선 이후를 예상하느라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당연히 한국도 미중 신냉전, 한미 동맹, 북핵 정책 등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먼저 누가 당선되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들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대선 이후에도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 추세는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지난 1990년 전후 동구 공산권 붕괴, 소련 해체, 독일 통일, 제1차 걸프전 승리 등을 통해 화려하게 단극 시대를 개막했지만 ‘노 마크 미국 패권 시대’는 길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시진핑 이후 중국의 노골적인 도전 등을 겪으면서 패권적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허리케인 트럼프’가 미국을 강타하면서 더 많은 변화를 불렀다.
트럼프 바람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념과 기조들을 가로지르며 양당 간 기존의 정책 차별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과거 같으면 진보적인 민주당을 지지했을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공화당 내에도 ‘난데없이 등장한’ 트럼프 가문이 백악관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트럼프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수행해온 ‘민주주의 수호 세계경찰’이라는 전통적 역할을 부인하면서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을 포기하고 있다. 조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면서 5배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식 후려치기’가 사라지고 한미 동맹은 다소 예측 가능성을 회복하겠지만 도도히 흐르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큰 추세 속의 ‘작은 변화’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국의 반중 기조는 불변일 것이며 군사·경제·무역·기술·정보·우주 등 모든 분야에서의 미중 ‘신냉전적 경쟁’도 지속될 것이다. 중국을 ‘안보위협 겸 경제협력 파트너’ 정도로 봤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인식은 트럼프 시대에 와서 ‘함께 갈 수 없는 적대국’으로 바뀌었고 이 기조는 개정된 민주당의 정강책에도 반영돼 있다. 민주당은 ‘하나의 중국’ ‘책임 있는 중국의 역할’ 등을 강조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중국 공산당’ 표현을 사용하며 강력한 반중을 표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면 착각일 것이다.
셋째, 북한의 핵질주도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 재선 시 북핵 일부를 포기시키는 대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나쁜 부분해결(bad small deal)’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유지’라는 원칙들을 견지할 가능성은 크지만 한반도와 북핵이 미 정부의 어젠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질 것이다. 어쨌든 북한은 계속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병기와 한미군의 미사일방어망을 무력화하는 수단들을 개발할 것이다. 유엔의 대북 제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변칙기동 탄도미사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향한 평양 정권의 열정을 식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차단, 한미 동맹 무력화, 대남 군사적 우위 등 북한이 추구하는 대미 및 대남 전략들이 불변이기 때문이다.
신냉전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한미 동맹을 어떻게 유지·발전시킬 것인가, 북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의 문제들은 대한민국이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맞닥뜨리고 있는 핵심적 도전과제들이다. 미 대선 이후에도 이 도전과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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