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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바이크]<113>진주 수복빵집-거제도 해안도로 '대충' 정복

프라하 야경 못잖은 진주성과 기묘한 진양호의 매력

옥포 백반집-칠천도까지 나홀로 모터사이클 투어





지난번 지리산 나홀로 투어(아니 아직도 안 보셨단 말인가?! 클릭)의 성공에 힘입어, 이번에는 거제도를 달려 보기로 했습니다…라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적고 있는데요. 벌써 전생의 기억같고 너무 그립습니다.

심사숙고해서 거제도로 정한 건 아니고, 지리산과 마찬가지로 역시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멀어서 못 갔던 동네라서 그냥 찍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1인 투어. 혼자 마음 가는대로 달리면서 음악 듣고,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숙소에 처박혀 있는 게 그렇게 좋더라구요.

친구 없는 거 아니라구요(울먹)


코스 역시 내키는 대로 정했습니다. 메인은 거제도, 사이드는 진주입니다. 진주에서 1박을 하고 거제도에서 2박을 하며 거제 해안도로를 일주하기로 했습니다. 진주 1박을 결정한 근거는 서울에서 거제도까지 바로 가기 조금 멀다는 점(이륜차 기준 8시간 by 내비게이션), 그리고 진주에는 줄곧 가 보고 싶었던 맛집이 있다는 점이었죠. 바로 이 곳, 수복빵집입니다.



수복빵집에선 팥소가 들어간 찐빵에 묽은 팥죽을 부어 내 줍니다. 이렇게 찐빵 한 접시가 3,000원. 1947년에 개업한, 진주 출신인 저희 회사 모 부장께서 어렸을 때도 사다 드셨다던, 그런 유서 깊은 집입니다. 매일 낮 3시간씩밖에 영업을 안 하셔서 긴장하며 찾아갔더니 포장 손님이 대다수라 테이블은 넉넉하더군요. 맛은…찐빵은 쫄깃하고 팥은 은은하게 달았습니다.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먹으면서 마음이 푸근해지는, 소박하고도 고풍스러운 맛입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동네니까 이 곳의 명소, 진주성과 진양호도 둘러봅니다. 사실 시간도 남아서 별 생각 없이 들러봤는데 상당히 좋았습니다. 진주성은 야경이 아름다워서 작년에 비싼 돈 쓰고 다녀온 체코 프라하가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북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좋았습니다. 서울에 진주성을 옮겨놓는다면, 1평당 세 명쯤은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진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남강 산책로 역시 ‘진주 시민들은 산책을 싫어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했습니다. 그 한적한 동네에서 두 번이나 ‘도를 아십니까’에 잡히긴 했지만 말입니다. 제가 좀 착하고 말 잘 듣게 생기긴 했습니다.

진양호는 조금 독특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세계의 괴수를 소환할 수 있는 것처럼 생긴(아님) 정자 하며, 커피 프랜차이즈를 감싸는 기이한 놀이기구 레일과 그럼에도 잔잔히 빛나는 거대한 호수까지. 이런 풍경들을 보러 서울에서 몇 시간을 달려왔구나 실감이 났습니다.

윗사진부터 몬스터 소환 지점 같은 진양호 우약정-드넓은 진양호-레일(영업중단)로 둘러싸인 산장풍의 카페.


겉핥기지만 멋진 풍경들 잘 봤으니 됐습니다. 진주를 둘러보고, 이제 거제도로 갑니다. 가는 길에 고성 ‘학섬휴게소’와 통영 해안도로를 거쳤는데 역시 눈이 호강했습니다. 나홀로 투어라 그 감격을 당장 누군가와 나눌 수가 없어서 아쉬운 한편 나만의 기쁨을 누리는 듯한 묘한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거제. 교차로 이름이 ‘3번 교차로’, ‘4번 교차로’ 이런 곳들이 눈에 띄어서 일단 신기했습니다. 밋밋하긴 하지만 내비만 따라 다니는 저 같은 사람에겐 더 편리하게 느껴지더군요. 두 번째 신기한 풍경은 퇴근 시간에 작업복 차림으로 스쿠터를 타고 우르르 퇴근하는 중공업 종사자 분들. 마침 숙소가 모 중공업 앞이라 찍어봤는데 정말 바이크 퇴근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바이크 인구가 많아선지, 거제의 바이크샵들은 대체로 크고 널찍하고 북적였습니다. 아래 영상이 안 보이시는 분들은 클릭!
거제 해안도로는 두말할 필요 없이 좋았습니다. 수도권 거주자들은 좋은 풍경 좀 보려면 두세 시간씩 고생해서 수도권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여기는 조금만 달리면 국내 최상급 풍광이 아낌없이 쏟아진다는 점에서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거제 해안도로를 열심히 따라 달려도 시간이 남아서, 거제도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섬들인 가조도와 칠천도도 한 바퀴씩 돌고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라이더는 눈에 안 띄었습니다. 이 역시 인구밀도가 낮은 탓일까요? 정말 드문드문 마주치다가, 한 번은 8명쯤 되는 대집단이 저를 지나쳤는데 제가 반갑게 들어올린 손이 무색하게도 아무도 인사를 안 하시더군요. 로드부터 리어까지 한 명도!! ‘라이더끼리 인사=국룰’인 줄 알았던 저로서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거제도 또는 인근 지역민들께선 댓글로 해명 부탁드립니다(진지).

왜그랬어요 나한테...




이번 투어에서 제일 오래 멈춰있었던 곳은 ‘칠천도’의 ‘어온마을’이었습니다. 칠천도에는 대나무숲이 많았는데, 잔잔한 바다와 대나무숲이 도로 양쪽을 감싼 이 곳에서 멈춰서 저의 인생과 미래와 인간관계 등등을 조금 고민....해보려다 그만 멍을 때리고 말았습니다. 저의 최신 스마트폰과 (예전보다 나아진) 폰카 실력으로도 담을 길 없는 아름다움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가조도 어온마을 바닷가. 무성한 갈대밭처럼 보이는 저 곳이 전부 대나무숲입니다.


백반, 국밥, 스시, 간식, 커피 등등 혼자서도 아주 잘 먹고 다녔는데 특히 백반집들...서울 시내에선 왠지 찾아보기 힘든 백반집들이 진짜 꿀이었습니다. 거제도 옥포 중앙시장의 ‘경주식당’은 어떻게 거의 국내산 재료만으로 이런 7,000원짜리 정식을 내오는 걸까요? 이번 투어의 최대 미스터리였습니다.

경주식당은 위 왼쪽 사진.


숙소에서 읽은 책들.


마지막 날은 바쁘게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경기도 진입 전까지는 조용하고 가을 정취 가득한 국도가 이어져서 심심할 틈이 없었습니다. 중간에 들른 어느 낡은 휴게소에서는 그 곳에서 관리받으며(?) 사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너무너무 사람을 좋아해서 떨치고 오기 참 힘들었습니다.

표정은 전투적이지만 낯선 사람을 너무너무 좋아했던 러시안블루 고양이와 쪼꼬만 댕댕이...(하앍)


또 저에게는 음악이 있으니까요.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 한국의 여느 십대들과 마찬가지로 방구석에 처박혀 메탈리카와 드림씨어터를 즐겨들었는데요. 이번 투어에선 오랜만에 그들을 소환해 헬멧 속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쯤엔 감성 돋는 미스터칠드런이나 키린지나 마마스건도 초빙하구요. 저와 취향 비슷한 분들은 댓글로 푸처핸섭!! 어릴 적 우상들 덕에 행복하게,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거제도에서 서울까지 열 몇시간 걸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해지기 전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천까지 서울 집까지 올라오는 데 전체 주행 시간의 절반 정도는 걸린 것 같지만요. 역시 수도권 교통체증의 위엄...!!

나홀로 투어는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 같습니다. 낯선 지역에서 왠지 도망자 같은 기분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상상해보는 재미에 빠진 것 같습니다. 저는 매년 이맘때 두유바이크에 썼듯 겨울에 바이크를 아예 안 타는데요. 겨우내 그 숱한 도로를 그리워하며 외롭고 고독하게...가 아니라 다른 취미생활 열심히 하면서 봄을 기다릴 계획입니다. 겨울에도 계속 타시는 독자님들은 블랙아이스 조심, 추위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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