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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원로 특별좌담<3>] "한일관계, 국내 정치 이용 않겠다는 신호 줘야 실마리"

■한일관계 진단

신각수 전 주일대사. /이호재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식 취임하면서 한미는 물론 남북·북미·한중·한일관계가 모두 변곡점을 맞았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 기조를 벗어나 전체주의 진영에 대응한 자유민주주의 진영 간 연대·동맹 중심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의 외교 안보 전략도 크게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서울경제는 서면과 전화통화 방식을 통해 외교안보 원로 특별좌담회를 마련하고 각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김숙 전 유엔대사(현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국가기구 설립추진단 공동단장), 신각수 전 주일대사, 권영세 국민의힘 국회의원(전 주중대사)의 포괄적 의견을 들어봤다. 다음은 한일관계에 관한 이들의 견해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전 주중대사). /권욱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는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분리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직 반응이 없는데 우리가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요.

▶신각수: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과거사와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내세웠어요. 그러나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함으로써 한일 위안부합의를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외교적 해법을 내는 데도 소극적 태도를 보였죠. 여기에 일본이 반발하면서 사실상 ‘원트랙’으로 바뀐 실정입니다.

문 대통령이 이번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문제 관련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는 피하는 게 바람직하며 그 이전에 외교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정부의 실제 행동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그 이면에는 한국 정부가 도쿄 하계올림픽을 ‘평창 어게인’으로 만드는 데 목적을 둔 게 아닌가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결국 관계 회복 여부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피해자, 지원단체 등과 협의해 실효적 해결방안을 마련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얻어 특별입법을 통해 외교적 타결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동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등 한일 협력이 가능한 분야를 발굴해 구체적 성과를 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악화된 양국 국민감정을 순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하고요. 그래야 우리가 당초 의도한 투트랙 접근을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권영세: 문재인 정부는 대부분 외교정책이 국내 선거용이에요. 최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에서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만났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수법으로는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위안부 합의를 엎은 것부터 강제징용·위안부 판결, ‘이번 총선은 한일전이다’라는 20대 총선 슬로건까지 전부 보여주기 식이었습니다. 국내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전략이었어요. 역사적 책임은 물론 일본에 있습니다. 그러나 미시적 차원에서의 한일관계 악화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걸 확실히 해야 합니다.

스가 정부도 현재 어려운 상황이고 우리 정부도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새로운 모멘텀을 찾기가 어려울 겁니다. 한일 간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짚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김숙: 양국 관계가 오늘에 이르게 된 원인에는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이 있습니다. 과거사, 독도 문제 등 먼 원인은 일본이 제공한 게 틀림없습니다. 반면 최근 현안에 대한 가까운 원인은 우리 정부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봅니다. 현 상황에서 양국 정부 모두 책임감과 역사적 성찰을 결여한 채 옹졸한 국내 정치적 시각에 함몰돼 있습니다. 이걸 탈피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 기업 자산 강제집행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은 급한 위기 상황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적절했다고 평가합니다.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관계를 분리하겠다는 발언도 좋았습니다. 문제는 일본 내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미 극에 달한 상태라는 점입니다. 상호 신뢰 회복이 우선이에요. ‘현재와 과거가 싸우면 피해는 미래가 본다’는 격언처럼 양국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비정삭적인 상황을 벗어나겠다는 인식을 절박하게 가져야 합니다. 한일관계 악화 이후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의 고통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윤병세: 1965년 수교 이래 한일관계가 일시적으로 불편한 적은 많이 있었지만 정부 임기 내내 불편하다가 최악까지 간 경우는 지금이 처음일 겁니다. 1965년 체제로 불리는 한일관계의 기둥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끼는 게 가장 큰 이유죠.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가 연이어 국내 법률 문제로 치환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김영삼 정부 말기 악화됐던 한일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양국 지도자의 미래를 보는 결단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법률 문제가 아니라 외교를 통해 미래로 가는 대로를 만든 것이었어요.

대일 외교는 공통의 이해 영역을 발굴·확대하고 갈등 요인을 사전에 예방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될 경우 사후 위기관리라도 과감하게 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출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양국관계기 루비콘 강을 건너면 과거사와 미래 관계를 분리해서 대응하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현 정부는 남은 기간에 양국 정부와 국민 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실질 조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후임 정부와 미래 세대에 한일 관계 파탄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유산으로 넘겨서는 안 돼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수원=오승현기자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삼각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윤병세: 국내 일각에서는 한미관계와 한일관계를 별개의 양자 관계로 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미국은 6·25전쟁을 계기로 일본·한국과 양자 동맹을 맺은 뒤 두 동맹 간 상호 보완적 역할을 강화하는 ‘자전거 바퀴살’ 전략을 취해 왔습니다. 집단적 성격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는 다르죠. 이 전략은 탈냉전, 9·11 사태, 북한 핵위기, 최근 미중갈등을 거치면서 계속 현대화되고 있습니다. 양자 동맹 간 다자적 연계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해 왔어요. 궁극적으로는 통합하거나 상호 운용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요. 이 전략이 동아시아, 아시아·태평양, 인도·태평양으로 지역 범위를 넓혀갔어요. 오바마 정부 이후 일본은 지역 평화와 번영의 초석(코너스톤)의 역할로, 우리는 핵심축(린치핀)의 역할로 각각 자리매김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내정자, 커트 캠벨 인도·태평양조정관(아시아 차르) 내정자 등은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적극 주도한 인사들입니다. 다자주의와 동맹 간 협력을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는 전략 동맹이자 가치동맹인 한일 양국이 수교 이후 최악의 관계로 후퇴한 것을 크게 우려할 겁니다. 양국이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강하게 관여하고자 할 것이고요. 한일 양국은 북핵에 따른 실존적 위협에 직면해 있는 당사자들로서 안보적으로 긴밀히 연계돼 있습니다. 양국 관계가 한미일 삼각 체제의 한 축이라는 외교 안보 환경 변화의 큰 흐름을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한미일 3자 협력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 핵심축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미국의 정책에 탈동조화되는 상황을 맞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스스로 외교 전략적 공간을 축소시키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죠.

▶신각수: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동맹을 통한 공동대응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동북아 정책의 핵심인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 아래에서는 동맹경시와 한일관계 악화로 한미일 삼각협력이 정체된 상태였죠.

바이든 정부는 대중국 전략상 한미일 삼각 공조관계를 복원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악화된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되고요.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미일 삼각협력,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다자 안보협력체), 쿼드 플러스(쿼드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등 국가들을 추가하려는 구상)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과거 오바마 정부 때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출장 경로에 일부러 한미일 차관급 협의를 넣고 참가자들을 격려한 적도 있습니다.

한일 양국은 북핵이나 중국 문제 등에 입장이 유사합니다. 따라서 양국은 미국이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펴는데 협조할 경우 얻을 실익이 많죠.

김숙 전 유엔 대사. /오승현기자


▶김숙: 한미일 3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국제협력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중국의 패권화 방지, 동북아의 안전과 번영 과 같은 전략적 안보 목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한미·미일 간 양자 동맹을 삼각 간접 동맹이라고 합니다. 한일관계가 무너지면 삼각동맹 자체가 무너지게 되고 중국·러시아·북한에 대응하는데도 상당히 불리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2019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얘기한 것이고요.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지정학적·문화적·역사적 소양이 깊어 다행입니다.

▶권영세: 한미일 삼각동맹은 미국 입장에서 동북아시아 역내 평화 유지와 중국 견제 차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일관계가 회복돼야 효과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을 겁니다. 가능성은 낮지만 한일관계 회복이 더디거나, 틀어지거나, 급박한 상황을 맞는다면 미국은 일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미일 동맹에 균열이 생기면 쿼드 등 다른 방식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윤경환·김인엽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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