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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호기심 많은 당나라인의 '수입품 플렉스'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에드워드 셰이퍼 지음, 글항아리 펴냄

7세기경 번영 누리던 대당제국

국력 앞세워 교역국에 공물 요구

노예·음악·동물·옷감·서적 등

이국서 낯선 물품 들여오며 열광

무역 발전 과정·생활상 변화 담아

당나라의 해외 무역은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 뱃길을 따라 수많은 원양 상선이 중국 항구에 몰려들었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자와섬 보로부두르에 남아 있는 원양 상선의 부조/사진=글항아리 제공




‘7세기 사마르칸트 왕국에서 당나라 황제에게 두 차례 노란 복숭아를 공물로 보냈다. 복숭아는 거위 알만했으며 금과 비슷해 ‘황금 복숭아’라고 불렀다. (중략) 전설은 이 나무에 신비를 더한다. 이 복숭아는 처음 보는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당나라인들에게 이국적인 상품의 상징이 되었다.’

이국적인 물건은 그 자체로 강한 힘을 지닌다. 미지(未知) 혹은 선진(先進) 재화에 상인들이 만들어낸 환상과 소비자의 호기심이 더해지면 거래가 이뤄지고 돈을 불러온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국내 론칭이나 신제품 출시에 대기표를 뽑아가며 새벽부터 기다리는 오늘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1,200년 전, 중국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며 국력을 과시했던 당나라 시절에도 사람들은 낯선 물건에 열광했고 그렇게 오늘날 ‘무역’이라 하는 국가 간 거래는 발전을 거듭했다. 신간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는 대당제국(大唐帝國) 당시 육로와 해로를 통해 들어온 문물을 통해 세계 무역의 교류 양상을 조명하고, 당에 들어온 이국적 수입 문물이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본다. 책 제목인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는 실제 이 시기 당에 들어온 과일이자 당나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수입품을 상징한다.

당나라 화가 염입본이 그린 직공도(職貢圖)에는 당나라와의 교역을 위해 조공물을 가지고 이동하는 외국 사절의 행렬 담겨 있다./사진=글항아리 제공


책은 상당 부분에 걸쳐 당이 이국에서 들여온 물건을 소개한다. 그러나 정작 눈길이 가는 것은 당시 교역을 둘러싼 당 조정- 관리-외국인 상인의 물고 물리는 권력 관계다. 당시 조정은 관리에게 높은 윤리 의식을 요구했지만 지역 관리들에게는 이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들은 ‘관세’라는 명목으로 외국 상인들에게 과도한 상납을 요구했다. 정부의 부당한 공물 요구도 빈번했다. 예컨대 아라비아 상인은 당에 입국했을 때 화물의 3분의 1을 정부 창고에 상납해야 했다. 당에서 거주하던 외국인 상인이 죽으면 정부와 거래하던 상품은 봉인됐고, ‘상속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가가 상품을 압수·몰수했다. 국력의 차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실상 당나라의 속국이었던 교역국들은 대국과의 거래를 위해 엄청난 조공을 바쳐야 했다.

이민족 노예부터 음악, 동물, 식물, 향료, 음식, 옷감, 보석, 서적 등 온갖 물품이 당으로 들어왔고, 이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귀족들과 귀족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외국 사절을 환영했다. 당나라 중엽엔 여자들 사이에서 꽉 조이는 소매와 몸매를 드러내는 치마가 특징인 ‘이란풍 의상’이 인기였다. 궁궐에서는 위구르 가발을 쓰는 것이 유행했고, ‘돌궐 스타일 붐’이 일자 장안 길거리에서 유유자적한 천막 생활을 즐기는 귀족까지 등장했다. 이런 시대상을 한탄한 시도 남아있다. ‘서양 말 탄 기수가 재와 먼지를 일으키기 시작한 이래/ 모피와 양털 그 거칠고 역한 악취 함과 낙을 채웠네/ 여자들 서양 화장에 빠져 서양 여인처럼 꾸미고 다니고/ 예인들 서양 음악에 빠져 서양 음악만 연주하는 구나.’(원진作)



외국에서 전해진 문물은 시나브로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물들여 갔다. 계절 따라 바뀌는 유행 뿐만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런 물건(이국적인 문물) 하나하나가 당나라 사람들의 상상력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극했고, 생활 자체를 바꿨다”며 “시, 소설, 상소문 등 문자 형태로 남은 이국적인 물건이 새롭게 변화한 삶과 죽음의 관념적 인상에 영향을 미쳤음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는 물질 세계를 넘어선 정신 세계의 과일로 변화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주석을 포함해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90% 이상은 당나라가 수입했던 물품에 대한 기록이다. 잘나가던 시절의 ‘플렉스’(Flex·젊은 층에서 자신의 부나 성공을 과시하는 행위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어느 순간 지루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 나온 시점을 알고 나면 이 구성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책이 출간된 1963년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패권을 쥐었을 때다. 교역을 원하는 속국들의 조공을 받으며 이국적인 사치품을 들여왔던 과거 당나라를 통해 현재(1960년대) 미국의 세태를 풍자하고자 한 의도가 드러난다. ‘서양의 시선으로 본 오리엔탈리즘 적 중국이 아닌, 당나라의 눈으로 본 서양의 오늘’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 것이다. 방대한 양과 단조로운 구성이 부담스럽다면 책 맨 뒤의 ‘옮긴이의 글’을 읽어 책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는 것을 추천한다. 3만 8,000원.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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