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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어떻게 근대미술의 중심지가 됐나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때와 땅' 30일까지

서화 전통에 양화 수용하며 동인,연구소 설립

이쾌대,이인성,정점식 등 근대미술 거장 배출

최은주 관장 "전통에 눌리지 않는 진보적 현대성"

이쾌대가 1940년대 후반에 그린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사진제공=대구미술관




푸른 두루마기 자락이 바람에 날리건만 붓과 팔레트를 쥔 화가의 손은 단호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구도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에서는 평화로운 논길을 가로지르는 아낙들이 보인다. 한복을 입고 중절모를 쓴 옷차림이나, 서양화 재료를 쓰지만 동양화 붓을 들었다는 점은 서양문물을 적극 수용하는 근대기 지식인의 혼란, 해방공간의 이념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현실 극복과 발전 의지를 보여준다. 이쾌대(1913~1965)가 1940년대 후반에 그린 ‘자화상’이다.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대표적 근대 미술가이자 특히 고뇌하는 한국인의 내면을 탁월한 인물화로 그렸던 이쾌대는 대구 수창학교를 다닌 ‘대구 화가’다.

관람객들이 '때와 땅'전에 나란히 걸린 이인성의 '가을 어느날'(왼쪽)과 '경주 산곡에서'를 관람하고 있다. /대구=조상인기자


그와 같은 시기 수창학교를 다닌 이인성(1912~1950)은 독학으로 터득한 그림실력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고 일본 언론으로부터 ‘조선의 지보(至寶)’라는 칭송을 얻었다. 이처럼 이름 날린 근대화가 중에 유독 대구 출신, 혹은 대구와 인연있는 인물들이 많다.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의 유족도 고인이 수집한 근대미술품을 여러 국공립미술관에 기증하면서 각별히 대구미술관을 챙겼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정점식부터 현대미술 전환기의 곽인식·서세옥, 이후 1970~80년대 개념미술인 ‘아방가르드’의 김구림·박현기·이강소 등 현대미술운동에서도 대구화가들이 구심점을 이뤘다. 이유가 뭘까?

대구미술계는 전통 서화의 기반이 탄탄했지만 양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예술의 기반을 다져다. /대구=조상인기자


대구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해 오는 3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때와 땅’이 그 답을 보여준다. 대구는 일찍이 전통 서화에 대한 애호가 탄탄했지만 석재 서병오(1862~1935)는 빠르게 들어온 근대 양화와의 공존을 고민했고, 1920년대 초 설립된 ‘교남학원’의 도화(미술) 수업, 이상정·이여성 등 예술인이자 사회운동가인 이들이 설립한 ‘벽동사’ 등이 새로운 시대 예술 거점의 기반을 만들었다. 전시를 기획한 박민영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개인적 여기문화이던 서화 전통을 넘어 대구 미술인들은 모임과 연구소를 만들어 일찍이 체계적으로 다져가는 과정을 진행했기에, 근대미술은 물론 현대미술이 발돋움 할 토양을 조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쾌대 '군상1-해방고지' /사진제공=대구미술관




전시 1부는 그 시기의 전통 서화가 어떻게 양화와 접목해가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이어 1930년에 결성된 ‘향토회’는 순수 양화 연구 단체로 특히 수채화를 중심으로 향토의 미감을 표현했다. 그 절정이 탄생시킨 작가가 바로 이인성과 이쾌대다. 이인성의 대표작 ‘어느 가을날’과 ‘경주 산곡에서’가 소장처 삼성미술관 리움을 떠나 한 곳에서 동시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30년대 일제는 조선 문명의 미개함을 선전하기 위해 ‘향토론’을 내세웠지만 이인성은 이에 순응하지 않고 조국의 잘못된 현실과 무력한 상황을 비애미를 통해 은유적으로 그렸다. 그 맞은 편에는 이쾌대의 자화상부터 ‘군상’ 연작 등이 자리 잡았다. 이쾌대는 서울로 가 ‘성북미술연구소’를 운영하며 이인성과 남관을 교수진으로 앉혔고 ‘물방울’의 김창열 등 후학을 양성했다.

이인성 '가을 어느 날' /사진제공=대구미술관


전시는 수용한 서양미술을 전문적으로 다져가는 과정, 피난지 대구의 예술이 보여주는 추상화와 초현실주의 경향 등을 펼쳐 보인다. 총 64명 작가의 140여 작품이 대구의 미술인 동시에 한국 근대미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대구 미술은 전통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진보적 현대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전시 제목인 ‘때와 땅’에서 때는 당시 그들의 시대의식, 땅은 민족의식으로 확대된 향토의식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서동진이 1930년대에 그린 '은행이 있는 거리' /사진제공=대구미술관


한편 이 같은 대구와 미술계의 각별함이 최근 귀한 작품 기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포문은 ‘이건희 컬렉션’이 열었다.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과 서진달의 ‘누드’, 유영국의 ‘산’과 이쾌대의 후기작 등 유작 7점을 비롯해 김종영·변종하 등 한국 근대미술의 정수만 모은 21점이 기증됐다. 미술관 측은 이들 작품을 홈페이지와 SNS채널 등을 통해 이미 공개했고 오는 12월 ‘웰컴홈’(가제)을 주제로 특별전을 준비 중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수묵추상의 개척자로 명성을 쌓은 서세옥(1929~2020), 추상조각의 거장이며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최만린(1935~2020)의 유족이 고인의 뜻에 따라 각각 90점, 58점의 유작을 대구미술관에 최근 기증했다. 이 외에도 강운섭·권진호·박인채 작가의 유족과 남성희 대구보건대 총장 등 개인 소장가들의 근대미술품 기증이 줄을 잇고 있다. 최 관장은 “올 상반기에만 총 223점을 기증받았는데 이는 한국 미술을 이끌어 온 대구 미술의 저력과 그에 기반한 대구미술관의 입지와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대구)=조상인기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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