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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부 하기 좋은 나라

한재영 산업부 기자





최근 만난 10대 그룹 계열사의 연구소장 A 씨는 “요즘 기업들은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을 잘 안 받으려고 한다”고 했다. 놀라서 이유를 묻자 “워낙 여러 과제에 ‘걸치기’식으로 예산을 쪼개다 보니 금액 측면에서 도움이 별로 안 되는데 간섭만 받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찔끔 지원 받고 간섭 받느니, 돈 안 받고 회삿돈으로 연구하는 게 속 편하다는 얘기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대기업에 주어진 국가 R&D 지원 금액은 3,735억 원이었다. 과제 수는 320개. 과제당 평균 약 12억 원이 주어진 셈이다. 289개 과제에 4,162억 원이 지원된 2018년보다 과제당 지원비가 줄었다.

정부가 대기업 R&D 예산을 줄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자는 행정 편의주의가 그 중심에 있다고 본다. 대기업 지원을 늘리는 데 대한 부담, ‘이 과제는 왜 지원 안 했느냐’는 정치권 공격에 대한 면피, 쥐꼬리 지원해놓고 과제가 성공하면 숟가락을 올리려는 욕구 등 여러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심사숙고해 선택과 집중을 하기보다 ‘좋은 게 좋다’는 마인드로 예산을 나눠줬을 것이다.



요즘 재계에서는 “한국은 정부 하기 좋은 나라”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비꼰 말이다. 기업의 44조 원 투자를 지렛대 삼아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최고의 회담을 이끌어냈으니 한국만큼 정부 하기 좋은 나라가 또 있겠나 싶다. 삼성·현대차·SK·LG 같은 기업의 투자가 없었다면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을 왜 일본 총리보다 융숭하게 대접했겠나.

전 세계에서 대접 받는 한국 기업을 정작 우리 정부는 징벌적 상속세와 높은 법인세로 옭아매고 있다. 신사업은 낡은 규제로 묶어놨다. 기업인을 불러다가 으름장 놓았다는 얘기는 1970~80년에나 있었는 줄 알았는데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 혼내주고 왔다’고 자랑하듯 말했던 게 바로 이번 정부 일이다. 정부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는데 기업은 ‘정부 하기 좋은 나라’라며 한숨짓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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