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의 양대 축인 자동차와 조선 업계가 또 한번 노사 리스크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업황이 회복의 기지개를 켜는 상황에서 노조가 하투를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조선사들은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면 실적 개선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찬성률 76%로 파업에 나서기로 했고 현대중공업 노조도 6~9일 전면파업에 돌입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개정 노조법 시행일인 6일부터 오는 9일까지 전면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지난해 1월 현 노조 집행부가 출범한 후 부분파업은 있었지만 전면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2019년 5월 임금 협상을 시작한 뒤 2년이 넘도록 이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2월과 4월 임단협 잠정 합의안이 마련됐으나 조합원 투표에서 모두 부결된 뒤 수 개월째 정체돼왔다. 노조는 소식지에서 “수많은 투쟁을 통해 어렵게 교섭이 재개됐음에도 사측은 협상안조차 제시하지 않았다”며 “이제 조합원들은 성난 목소리와 집행부의 투쟁 결의를 한데 모아 전면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에 노조의 전면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전면파업 당시 사측이 추산한 하루 평균 매출 손실액은 83억 원이었다. 생산 차질로 선주와 약속한 인도일을 맞추지 못하면 수십억 원 규모의 지체 보상금도 지급해야 한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이번 파업은 코로나19의 충격을 딛고 수주 랠리에 들어선 상황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현재까지 연간 수주 목표인 149억 달러 중 140억 달러를 수주하며 94%를 달성했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조 원가의 30%를 차지하는 후판 가격이 오르며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는데 노조 파업으로 생산 차질까지 겹친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도 노조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1~5일 전체 조합원 7,635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찬성률이 76.5%에 달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번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중 6,613명이 참여해 86.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노조는 전체 조합원의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쟁의권 확보를 추진할 수 있다. 노조는 추가 교섭을 거쳐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에 나설 수 있다.
현재 한국GM 노조는 회사에 정년 65세 연장과 기본급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3,169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한국GM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특히 최근 미국 GM 본사를 방문해 국내 공장에 전기차 배정을 요구한 노조 지도부를 상대로 본사 고위 임원들이 파업 문제를 지적하는 등 갈등도 커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파업 준비 수순에 들어갔다. 7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와 함께 만 64세 정년 연장과 미래차 전환기의 국내 일자리 유지 등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MZ세대(1980∼2000년대생) 직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큰 데다 회사도 고용 경직성이 높아질 경우 신규 채용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협상에는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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