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업계의 올해 상반기 의약품 및 기술 수출 규모가 10조 원을 돌파했다. ‘K바이오’가 수출을 통해 반기 기준 10조 원이 넘는 실적을 달성한 것은 약 30년의 한국 의약품과 제약·바이오 기술 수출 역사 상 이번이 처음이다. 100여 년 전 사업을 시작해 약 30년 전부터 해외에 기술 및 복제 약 등의 제품을 팔아온 업계가 수 십년간 연구개발(R&D) 강화를 통해 세계 속에 우뚝 선 결과로 풀이된다. 여기에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도 K바이오 수출 증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는 이런 추세라면 의약품과 기술 수출 규모를 합친 금액이 연간 기준으로는 20조 원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수 년간 하반기 수출액은 예외 없이 상반기 수출 규모보다 컸다는 점 등이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는다.
25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제약·바이오 업계의 의약품 수출액은 42억 달러(4조8,363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31 억 달러(3조5,697억 원) 대비 36.1% 증가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의약품 수출이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며 “의약품 수출액에 기술 수출 금액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세청의 의약품 수출 통계에는 세관 신고가 이뤄지는 의약품 원료 및 완제품 등의 수출 규모가 잡힌다는 게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설명이다. 이 기간 기술 수출 규모는 5조4,472억 원에서 9.5%가 증가해 5조9,670억 원으로 늘어났다. 기술과 의약품 수출 합산 금액은 10조2,835억 원으로 전년 동기(9조169억 원)에 비해 14% 증가했다.
먼저 올해 상반기 의약품 수출액이 이처럼 가파르게 증가한 데는 독일향 수출액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2020년 6억5,000만 달러였던 독일로의 수출액은 2021년 13억5,000만 달러로 수직상승했다. 이에 따라 전체 수출 금액에서 독일향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21%에서 32.1%로 확대됐다. KOTRA 관계자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독일에서는 자가 면역 질환 치료제 수요가 지속적으로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며 “현지에서 한국산 자가 면역 질환 치료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대표적 수출 업체인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의 독일향 제품 및 의약품 원료 수출 규모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항생제 등 코로나19 치료 관련 의약품의 수출이 늘어난 것도 전체 수출액 증대에 힘을 실었다.
상승세가 매섭기는 기술 수출 쪽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사상 첫 수출 10조 원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업계는 올 들어 상반기까지만 5조9,670억 원의 기술 수출을 기록했다. 수출은 하반기에도 이어져 이날 현재 기준으로는 6조2,043억 원에 달한다. 이 규모에는 금액을 밝히지 않은 LG화학(051910)·HK이노엔·레고켐바이오(141080)·나이벡(138610) 등의 수출액은 포함되지 않는다. 4곳의 수출 금액을 합칠 경우 전체 규모는 더 커진다. 전년 동기(5조4,472억 원)와 비교하면 13.9% 증가했다. 올해 기술 수출은 GC녹십자랩셀(144510)·대웅제약(069620) 등 전통 제약사가 3조2,983억 원으로 앞에서 끌고 제넥신(095700)·알테오젠(196170) 등 바이오 벤처가 2조9,060억 원으로 뒤에서 밀었다.
기술 수출액이 늘어난 것은 수 십 년간의 연구개발 역량 강화를 통한 기술력 확보, 201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한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의 성과로 분석된다. 다국적 제약사의 기술 수요가 커진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30년 전에는 업계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복제 약으로 손 쉽게 사업을 영위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후 근본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기술력이 좋아졌다. 기술력 향상과 더불어 약 5년 전부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개방형 혁신도 기술 수출액 증대의 요인으로 지목된다”고 말했다. 기술 수출이 이뤄지다 보니 세계가 K바이오의 기술력을 인정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다시 기술 수출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 규모가 20조 원인 점을 생각하면 제품·기술 수출 금액이 20조 원을 넘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며 “진정한 ‘글로벌’ K바이오로 거듭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