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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의 박을 타자 얼쑤” 최고가 뭉쳤다

국립창극단 ‘흥보전(展)’ 연습현장서 만난

연출·극본 김명곤, 작창 맡은 명창 안숙선

“현대인이 꿈꾸는 저마다의 ‘박’ 주목하며

소리 참맛 살리면서 새로운 음악 시도도”

“은혜·복수 아닌 사랑·용서의 박씨를” 바람

지난 26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동에서 국립창극단 단원들이 오는 9월 15일 개막하는 창극 ‘흥보전’ 연습에 한창이다./사진=국립극장 제공




“실근 실근 툭탁 박 벌어진다.” 쩍 벌어진 박 속에서 값 나가는 비단과 옷가지가 우르르 쏟아진다. 누더기만 걸쳤던 내 새끼들, 멋지게 차려 입자는 흥보 처 말에 아들딸 신이 나서 외친다. “난 조르지오 알XX”, “난 에르XX”, “X브라운”

지난 26일 창극 ‘흥보전’ 연습이 한창인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동. 국립창극단 단원들이 ‘흥부네 박 타는 장면’을 신명나게 펼쳐 보이는 가운데 무대 한쪽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매섭게 빛난다. 이번 작품에서 작창을 맡은 명창 안숙선과 연출·극본을 담당한 배우 김명곤이다. 마이크를 손에 쥔 김명곤이 배우들의 동선부터 몸짓, 대사의 느낌까지 꼼꼼히 확인하며 연습실 곳곳을 누비는 사이, 안숙선은 조용히 앉아 손으로 박자를 타며 단원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이따금 함께 소리를 내기도 한다. 장면 시연이 끝나자 곧바로 안 명창의 입이 떨어진다. “집 짓기 노래 때 박자가 좀 빨라서 장단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보완 주문을 받은 김 연출은 안 명창과 한참 동안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짧은 한마디로 연습의 종료를 알렸다. “(안 명창께서) 재밌으시답니다.”

지난 26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국립창극단 신작 ‘흥보전’ 연습 현장에서 김명곤 연출(왼쪽)과 작창을 맡은 안숙선 명창이 단원들의 연기와 노래를 살펴보고 있다./사진=국립극장 제공


최고와 최고의 만남이다. 창극과 오페라, 연극 등 장르를 오가며 연출·극본 작업을 해 온 김명곤과 ‘소리’로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안숙선. 두 사람이 창극 ‘흥보전’에서 의기투합했다. 판소리 ‘흥보가’의 줄거리는 유지하되 ‘박’이라는 존재가 상징하는 민중의 염원을 중심으로 ‘제비 나라’라는 가상의 나라를 설정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날 연습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누차 강조하며 끈끈한 팀워크를 과시했다. 안 명창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재직 시절에 연출로는 신인이던 김명곤에게 협업을 제안, 1998년 창작 창극 ‘백범 김구’를 선보였다. “신인 연출가에게 기회를 주고, 안 선생님이 작창에 출연까지 해주셨죠. 배우면서 첫 작업을 했고, 그게 인연이 돼 이후 내가 국립극장장이 됐을 때 선생님과 몇 차례 작업을 했어요.”(김)

오는 9월 15일 개막하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흥보전’의 연출·극본을 맡은 김명곤(왼쪽)과 작창으로 참여한 명창 안숙선/사진=국립극장 제공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익숙한 듯 새로운 스토리다. 원작이 강조하는 권선징악과 형제 간 우애의 메시지보다는 그 이면에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에 초점을 맞췄다. 김 연출은 “흥보가의 내용과 교훈이 오늘날의 관객들에겐 별 감흥이 없을 것”이라며 “현대인이 꿈꾸는 저마다의 ‘박’이란 무엇인가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작업의 핵심은 주요 눈대목의 멋과 맛을 살리면서 각색한 대본에 맞는 새로운 소리를 선보이는 것이다. 안숙선의 작창이 더욱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여러 차례 완창하며 각 유파의 소리를 섭렵한 안 명창은 이 작품을 위해 판소리 ‘흥보가’의 다양한 창본을 뽑아 엮었다. “우리 소리에는 현대의 작곡 개념으로는 뽑아내기 어려운, 몸으로 체득한 선율들이 있어요. 등장인물의 몸짓에 따라 어떤 성음을 내야 하는지 판소리를 들으면 (답이) 금방 나오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작품을 완성했어요.”(안) 김 연출은 “안 선생님은 그 자체로 소리의 데이터 베이스”라며 “‘이 장면에선 이런 소리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면 바로 딱 들어맞는 답을 들려주셨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가사도 관객이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로 손을 봤다. 특히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올 때 부르는 ‘제비노정기’는 원곡 선율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우리 말의 맛을 더한 ‘친근한 소리’로 재탄생했다. 안 명창은 “판소리의 전통과 음악성은 살리면서 서양 악기 연주를 가미했는데 새로운 느낌이더라”며 “관객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지난 26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동에서 국립창극단 단원들이 오는 9월 15일 개막하는 창극 ‘흥보전’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사진=국립극장 제공


안 명창은 나날이 실력이 쌓여가는 단원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그는 “처음엔 목 상태가 좋지 않았던 단원들이 오늘 연습에서는 고음을 넘기더라”며 “죽기 살기로 덤비는 모습을 보려고 우리가 이 무대를 만드는구나 싶어 연습 때 나도 따라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극 중 제비 나라 여왕은 말한다. ‘이제는 은혜를 갚거나 복수하는 박씨보다 사랑과 용서의 박씨를 인간에게 내리겠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이 한 줄에 진하게 녹아 있다. 9월 15~21일 국립극장 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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