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본회의 단독 상정을 포기한 것은 입법 독주 프레임이 강화되면 차기 대선에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언론중재법에 우호적이었던 여론이 야당과 언론 단체 등의 반발로 빠르게 악화되자 당내 강경파의 반발을 감수하고 예상 밖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다만 야당과 언론 단체와 협의체 구성이라는 모양새를 갖춘 만큼 오는 9월 27일로 못 박은 시한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여당이 독소조항을 유지한 채 단독 처리를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31일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송영길 대표가 언론 단체는 물론 여권에 우호적인 정당과 시민 단체들이 모두 반대하다 보니 고민이 깊었다”며 “특히 당 원로들이 한목소리로 ‘여론이 좋지 않다. 지금은 한번 물러서야 할 때’라는 취지로 한 조언이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앞서 유인태 전 의원은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며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결국 4월 7일에 심판받은 것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송 대표 역시 민주당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중재법 처리는)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로 판단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는 이른 시일 내에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만 최대 쟁점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둘러싼 여야 인식 차가 워낙 커 논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날 합의를 두고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다른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구체적으로 여야는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 열람 차단 청구권 삭제 조항의 수정 방안 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허위 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하는 조항은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정작 여당 내에서는 완화 움직임에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야당은 해당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열람 차단 청구권 도입을 두고도 여야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열람 차단 청구권 조항은 모호한 지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삭제를 하든 수정을 하든 치열한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언론중재법 17조 2항에 따르면 인터넷 보도 내용이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해당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실하지 않다’ 등의 표현이 모호해 수정 보완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유의미한 합의물을 도출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은 물론이고 유튜브 등 1인 미디어 규제, 포털 뉴스 배열 관련 법안 등도 함께 논의해 일괄 처리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야당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당장 1인 미디어 규제의 경우 야당 지도부는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까지 삼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고수해 여당과 인식 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결국 협의체 구성은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그치고 여당이 9월에 언론중재법을 단독 처리하는 수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전망도 새어 나온다. 실제 한병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중요한 것은 9월 27일로 못 박았다는 것”이라며 “협의체에서 합의가 안 되면 진짜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 역시 “확고한 결심이 섰던 송 대표가 사회적 합의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큰 양보를 했다”며 “정해놓은 시한을 또다시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