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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운동 멀리한 세종 '강직성 척수염' 환자였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지환 지음, 부키 펴냄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전시품인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표준 영정./연합뉴스




조선 최고의 성군이자 천재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은 완벽주의자였다. 친히 전국을 돌며 군사를 격려하고 국방력을 점검하는 등 그의 관심 분야는 문무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업적에 가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또 다른 모습은 '고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해서 비대해진 왕'이다. 재위기간 중 쉴 틈 없이 일했던 워커홀릭 세종이 단순히 게을러서 운동을 멀리하고, 자기 몸과 건강을 돌보지 않았던 것일까.

이지환 건국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책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에서 세종에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강직성 척추염' 환자라는 진단을 내린다. 허리와 눈 증상을 동시에 발생시키는 질병은 척추에 염증이 생겨 허리 뼈가 대나무처럼 굳고, 합병증으로 포도막염을 일으키는 강직성 척추염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을 내린 데는 '조선왕조실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록에는 총 50차례에 걸쳐 세종의 증세가 언급된다. 눈병 12번, 허리 통증 6번, 방광염 증상 5번, 무릎 통증 3번, 심한 갈증 2번, 체중 감소에 관한 언급이 한 번이다. 나이대 별로 분석하면 무릎과 허리 통증은 20대 초반에 생겼고 30대에 심해졌으며, 눈 통증은 40대부터 악화했다. 세종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허리와 등이 뻣뻣하게 굳어서 굽히기 힘들 정도로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또 눈이 까끌거리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증상이 심해졌다가 씻은 듯이 낫기를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세종도 말타기, 사냥, 격구를 즐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직성 척추염이 불러온 끝없는 통증이 그를 주저 앉히고 만 것”이라고 적고 있다. 저자가 쓴 세종의 강직성 척추염 사례를 다룬 논문은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저자는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는 절차는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것만큼 근본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다양한 증상과 단서를 종합해 질병을 진단하는 일은 다양한 증거를 수집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범인을 밝혀내는 일과 비슷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명탐정 셜록 홈즈를 창조해 낸 아서 코넌 도일도, 홈즈의 모델이 된 조지프 벨 박사도 모두 의사였다.

책은 세종대왕 뿐만 아니라 건축가 가우디부터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니체, 밥 말리 같은 역사적 인물 10명의 건강 상태를 진단한다. 각각의 시대상과 의학 수준, 발병 과정, 외관상 병증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역사 문헌과 기록, 사진 자료 및 초상화, 국내외 의학 논문을 참고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역사 속 인물들의 질병을 추적하는 과정이 마치 추리 소설처럼 펼쳐진다.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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