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휴장 기간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거리면서 잔뜩 긴장했던 코스피가 다행히 순탄하게 거래를 재개했다. 중국 헝다그룹의 파산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 낮다는 데 금융시장의 공감대가 모아지고 한국 주식을 다시 채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외국인투자가는 5개월 만에 6거래일 연속 매수세를 기록했다. 다만 헝다그룹의 파산으로 중국 경기가 위축될 가능성은 상존해 당분간 코스피가 박스권을 돌파하기란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2.93포인트(0.41%) 떨어진 3,127.58에 마감했다. 중국 헝다그룹 파산 및 미국 부채 한도 협상 우려를 한꺼번에 소화하면서 코스피가 급락할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지만 ‘헝다 사태가 제2의 리먼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고 중국 인민은행이 8개월 만에 최대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며 하단이 지지됐다. 이날 아시아 증시는 대체로 호조세를 보였다. 대만 자취엔지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각각 0.90%, 0.38% 반등했다. 전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시장공개위원회(FOMC) 결과가 시장이 예상한 수준으로 나와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도 증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코스피의 낙폭을 방어한 주체는 외국인투자가였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5,590억 원을 순매수해 6거래일 연속 매수 우위를 기록했으며 삼성전자(1,824억 원), LG화학(1,421억 원), 셀트리온(633억 원) 등을 주로 사들였다. 이는 지난 4월 초 이후 최장 기간 매수 행진으로 이달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 2,760억 원을 사들였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186원을 돌파하며 1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상승 폭을 반납하면서 최종 전 거래일 대비 50전 오른 1,175원 50전에 마감했다. 순매수 규모가 크지 않아 외국인의 매수가 연속성을 지닌 것인지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거시 경제 불확실성이 축소되면서 과도하게 비중을 줄였던 한국 주식 채우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통화정책 등 거시 경제 불확실성이 올해 외국인 순매도의 주된 배경”이라며 “8월 말 잭슨홀 미팅 이후 불확실성이 누그러지면서 외국인이 다시 한국 주식 비중을 평균 수준으로 되돌리고 있다. 올 4분기 외국인 수급은 3분기보다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장은 투자자에게 안도감을 심어줬지만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한국 증시는 헝다 리스크를 예의 주시하며 변동성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헝다의 부채 규모는 350조 원 수준에 달하며 중국 정부도 구제에 나서지 않으면서 파산 가능성 열어둬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헝다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 국내총생산(GDP) 중 부동산 산업의 비중이 14%에 달해 헝다 파산 시 중국의 실물 경기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금융시장은 테이퍼링보다 헝다 리스크를 경계해야 한다”며 “테이퍼링에 이어 헝다의 디폴트까지 불거져 중국이 경기 둔화 위험에 직면한다면 신흥국 금융시장의 단기 충격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중국 부동산 경기와 연관성이 높은 국내 기계·조선 등 산업재 섹터의 투자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홍콩 항셍 부동산섹터지수가 전월 대비 하락하면 코스피 기계·조선업종지수는 월평균 각각 3.5%, 2.0% 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중국 개인의 자산은 부동산에 치중돼 있어 부동산 경기 악화는 소비 심리 냉각으로 이어져 국내 화장품 등 소비재 업종까지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반면 올해 내내 소외되며 주가가 바닥을 다진 바이오 섹터가 안전지대 역할을 수 있다는 의견이 공통되게 나온다. 코스피 건강관리지수의 코스피 대비 상대 수익률은 26개 업종 중 가장 낮아 관심이 환기될 만한 시기가 됐으며 중국 수출 의존도도 낮아 헝다 리스크로부터 자유롭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헝다 불확실성에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소외 현상이 가장 심했던 바이오의 하방 리스크는 제한돼 현 구간에서 대응이 적합한 업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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