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물류대란으로 위기에 처한 국내 기업들은 현지 진출 공장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컨테이너선 운임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수출 비용이 늘자 임시방편으로 지역별 생산 거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현지 공장이 없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배를 구하지 못해 제품을 보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져 대기업보다 피해가 심할 것으로 우려된다.
4일 해운 업계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항에서 출항하는 컨테이너선 15개 항로의 단기 운임을 종합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지난 1일 4,614.1로 전주 대비 0.64%(29.69포인트) 하락했다. 5월 14일부터 지난주까지 20주째 오르며 최고 기록을 매주 경신했지만 최근 상승 폭이 둔화하면서 하락세로 이어진 것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운임 하락이 일시적인 조정이라며 향후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동안 컨테이너선 운임의 고공 행진을 이끌었던 원인인 항만 혼잡 상황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다음 달 중국 광군제,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등 초대형 소비 시즌에 앞서 글로벌 물동량이 늘어나면 다시 운임이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운송비 증가로 난관에 처한 국내 기업들은 현지 공장 가동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글로벌 시장 가전 업체 강자인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는 미국과 멕시코 등 해외 공장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연휴 등으로 미국 시장에서 쇼핑 대목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판매 전략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국내 공장에서만 생산되는 일부 부품의 경우 배가 아니라 항공기로 운송해 현지 공장에 납품하고 있으며 LG전자는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을 야간에도 가동시켜 물량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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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물류대란으로 인한 타격을 대기업들과 달리 현지 생산 라인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들이 더 크게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1,036개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4분기 가장 큰 수출 애로 요인으로 물류 비용 상승(24.3%)을 꼽았다. 해상 운임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단가를 맞추기가 힘들고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제품을 보내려 해도 선박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든 뒤 북미와 남미·유럽·동남아 등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다. 중국 내 공장에서 발광다이오드(LED) 제품을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는 L사는 제품을 수출 국가로 운송해줄 배를 계약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데다 최근 중국 내 전력난까지 발생하는 바람에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27일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다 그동안 생산해놓은 제품마저 수출 국가로 빨리 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에서 캐릭터 완구를 생산해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O사의 경우 물류대란으로 운송비가 인상돼 결국 상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저하돼 난관에 봉착했다. 두 회사는 중국 진출 이력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지만 최근 진출한 기업들의 피해는 더 큰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기업들의 수출 난관을 해소하기 위해 무역협회와 일부 대기업들이 지원하고 있지만 물류대란으로 인한 피해는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물류를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086280)는 무역협회와 중소기업 해상 운송 지원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자동차 운반선 일부 공간에 중소기업의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캐나다·미국·남아공으로 가는 항로에 국내 중소기업들의 베어링, 파이프, 기계 제조 부품을 함께 실어 보냈다”며 “글로벌 물류대란에 앞으로 중소기업에서 운송과 관련된 지원 요청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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