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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 복잡한 한반도 체스판…'종잇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 文 종전선언 놓고 주변국 '동상이몽'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요즘 한국 외교가의 단연 화젯거리는 종전 선언이다. 종전 선언이 과연 무엇이기에 문재인 정부는 거의 ‘올인’하고 있는 것일까. 또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무엇인가. 종전 선언 관련국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한국의 종전 선언 추진은 결실을 거둘 수 있을까.

종전 선언의 사전적 정의는 ‘교전 당사국이 전쟁 종료에 합의하고 이를 선언하는 행위’다. 당사국이 합의한 종전 선언문은 때로는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난 1956년 일본과 소련이 합의한 종전 선언문은 매우 구체적인 후속 조치에 관한 합의 내용을 담고 있고 양국이 이를 준수해 국제법적 효력이 발생했다고 평가받는다. 종전 선언문이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이제 전쟁은 끝났고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라는 정치적 선언의 성격을 띤 경우도 있다. 2018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종전 선언이 하나의 예다. 양국의 종전 선언은 바로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선례를 살펴보면 법적 구속력 여부를 떠나 실질적인 평화 콘텐츠가 어느 정도 구비된 경우에만 종전 선언이 평화 체제 구축으로 귀결됐음을 알 수 있다. 평화 콘텐츠가 비어 있으면 명확한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평화협정도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북베트남·남베트남·미국이 체결한 파리평화협정이 대표적인 예다.



문재인 정부의 종전 선언 추진을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첫째는 당위론적 찬성이다. 한국전은 실질적으로 종식됐지만, 여전히 법적 교전 상태가 유지되고 있으니 ‘한국전은 끝났다’고 선언하고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남북은 이미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했지만 합의는 종전 선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니 합의 이행 차원에서라도 종전 선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입구론’이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 선언이라는 입구를 통해 평화 체제 출구로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해 종전 선언을 마중물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이유도 명확하다. 첫째는 원론적 차원의 반대다. 평화협정문 대부분은 ‘협정의 효력이 발생하는 이 시점부터 전쟁은 종식된다’라는 조항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평화 체제를 구축하며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되지 굳이 종전 선언을 따로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둘째는 ‘출구론’이다. 종전 선언을 할 수는 있으나 이를 레버리지로 북한 비핵화의 진전과 평화 체제 구축을 도모하며 종전 선언-평화협정 출구로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 안보보좌관의 발언처럼 “순서·시기·조건”이 중요하다. 셋째, 종전 선언이 초래할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우선 비핵화 진전 이전에 종전 선언을 하면 비핵화를 견인할 레버리지 하나를 소진하게 된다. 종전 선언을 계기로 북한과 중국이 유엔사 폐지를 요구할 수 있다. 유엔사의 법적 지위뿐 아니라 대북 제재, 한미연합훈련, 주한미군, 종국에는 한미 동맹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종전선언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美中 사이 독자적 외교공간 확보 노려

미중 경쟁의 격화로 아시아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강대국의 수 싸움이 매우 치열하고, 종전선언은 싸움의 형세에 영향을 끼칠 주요 변수다. 유관국들은 한 수 한 수마다 자국의 이익 관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의 진보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독자적인 외교 공간 확보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화해와 협력은 필수 조건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007년 10·4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2018년 4·27 판문점에서 종전 선언 추진에 합의했다. 종전 선언을 입구로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해 남북이 하나가 돼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한반도를 구상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 맞바꿀 대상 아냐"
유엔사 해체·미군철수 주장만 되풀이

북한은 종전 선언에 더 열의를 보여왔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다르다. 1970년대에는 조미(朝美) 평화협정을 요구했는데 한국은 정전협정 서명국이 아니니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했다. 1996년에는 평화협정 이전에 잠정 평화협정을 먼저 하자고 제안한 후 조미 군사위원회 설치 등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 10·4 남북 정상회담 선언문에 종전 선언 추진에 대한 합의가 명기된 데는 김정일 위원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2018년 당시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종전 선언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미국이 비핵화의 진전을 조건으로 내걸어 성사되지 않았다. 그 후 북한은 종전 선언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제재나 한미연합훈련과 같은 대북 적대시 정책과 이중 잣대를 먼저 철회하지 않는다면 종전 선언은 종잇장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맞바꿀 흥정물”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종전선언은 정전 체제나 한미 동맹과 무관하다”라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북한은 줄곧 종전 선언과 함께 구시대의 잔재인 유엔사는 사라져야 하고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러한 입장은 중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버티고 있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北과 연합해 美 제어 '연조제미' 전략

미사일훈련·한미훈련 동시중단 주장

중국의 입장은 북한과 더 동조화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중국의 골칫거리가 됐을 때, 미국과 협력해 북한을 제어하자는 연미제조(聯美制朝)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이제는 북한과 연합해 미국을 제어해야 한다는 연조제미(聯朝制美)가 대세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본격 가동하면서 중국은 남쪽으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다. 혹시라도 한반도가 뚫리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점점 더 제고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은 쌍중단(雙中斷)과 쌍궤병행(雙軌竝行)을 한반도 평화 해법으로 제시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훈련을 동시에 중단하고, 비핵화와 조미 평화 체제 전환을 동시에 진행하자는 주장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한반도 밖으로 밀어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중국은 평화협정은 참여하겠지만 “종전선언은 알아서 하려면 하라”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지만, 지금은 종전 선언 당사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마도 북한이 비핵화 압력만 받고 미국은 한반도 영향력을 유지, 강화하는 종전 선언은 비토할 것이다.


미국
바이든, 北에 조건없는 대화 복귀 종용
종전선언에 '제재해지' 악용될까 신중

미국의 조지 W 부시,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를 종전 선언의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 복귀를 종용해왔고, 종전 선언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견인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면 입구론적 차원에서 해볼 수도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연초 선보인 바이든의 대북 정책은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영 부담스럽고, 행여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감행하면 골치가 아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종전 선언 제안으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와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고 하니 솔깃했을 수 있다. 그래도 북한이 조건으로 내거는 제재 해제나 연합훈련 중지는 수용할 수 없고 종전 선언이 악용될까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국무부 법무팀은 종전 선언문이 초래할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법률 검토를 하고 있다. 유엔사의 지위나 주한미군, 한미 동맹이 흔들리면 미국의 아시아 전략 구상까지 흐트러질 수 있다.


일본

납북자 문제 진전없는 종전선언 반대

한반도서 美 방어선 후퇴 자국에 부담

일본은 당사국이 아니지만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즈음 트럼프는 종전 선언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를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이유는 납북자 문제다. 일본에 납북자 문제는 한국의 위안부 문제만큼 중요하다. 납북자 문제의 진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종전 선언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방어선이 한반도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유엔사의 지위 변경은 주일미군 요코타 기지의 유엔 후방사에도 영향을 끼치고, 한미 동맹의 형해화는 일본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 선언이 초래할 수 있는 지정학적 파급효과 때문에 관련국들의 합의 도출은 지난하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는 구속력 없는 정치적 이벤트라는 점을 강조하며 종전 선언 세일즈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평화 체제)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하며 종전 선언이 이를 위한 좋은 방안”이라고 한다. 모순이다. 구속력 없는 정치적 이벤트로 어떻게 비가역적 평화 체제 틀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대부분의 반대론자들은 종전선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틀을 만들고 종전 선언을 하라는 입장이다.

김재천 교수는…

미국 외교정책과 국제 안보 분야의 국내 대표적 전문가로 최근에는 미중 경쟁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예일대에서 국제정치학 석·박사를 취득했고, 예일 세계화연구센터와 정치학과에서 일하다가 서강대에 부임했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과 국제지역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통일준비위원회와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외교부 북미국 자문위원장인 김 교수의 국제 현안 분석은 영어 방송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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