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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순백의 雪國…'그림집' 홀로 서있네

■ 화이트시티로 변신한 '전남 장성'

동화 같은 설원 위에 '외딴집'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천국 축령산 편백숲

흰색 암벽 아래 눈 덮인 백양사까지

한겨울 추위 속 선물처럼 찾아왔다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풍경들 가득

장성 ‘그림집’은 마을과 동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한 빈집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천연잔디를 재배하는 잔디밭 창고로 쓰이다가 겨울이면 주변이 눈으로 뒤덮여 사진 명소로 변신한다.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풍경에 반해 눈밭으로 뛰어들어 갈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 꿈꾸는 짐승 같은 /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오세영 ‘1월’ 중)

시인 오세영은 1월의 색을 순수한 흰색으로 규정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출발을 의미하는 색.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이다.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은 원점에 선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는 순백의 눈부신 설경을 찾아 전남 장성으로 겨울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장성을 대표하는 색을 꼽으라면 노란색이다. 장성은 몇 년 전부터 황룡강을 매개로 옐로우시티 사업을 추진하면서 벽과 지붕, 다리 색까지 도시 곳곳을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겨울철 장성으로 여행객들을 빨아들이는 색상은 노랑이 아니라 하양이다. 노령산맥 아래 호남의 대표 다설지인 장성은 올해도 어김없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화이트시티’가 됐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집’부터 북유럽 풍경의 축령산 편백숲, 흰색과 인연이 깊은 천년고찰 백양사 등이 눈을 주제로 손꼽히는 장성의 대표 겨울 여행지들이다.

한겨울 장성 여행 일번지는 홍길동 테마파크도, 세계유산 필암서원도 아닌 평범한 시골집이다. ‘그림집’ 또는 ‘외딴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은 10여년 전 처음 사진작가들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홀로 자리한 작은 집은 눈 내린 뒤 날이 개면 파란 하늘과 새하얀 설원의 극명한 대비 속에 동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그림집’이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 놓은 듯한 외딴집의 모습은 눈이 녹으면 거짓말처럼 사라져 볼 수 없는 겨울철만의 풍경이다.

여행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곳은 장성에서도 가장 남쪽 삼서면 상무대 인근에 자리했다. 삼본로를 타고 가다 보면 보생리 마을과 동떨어진 들판. 야산 위에 그림집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사실 이 집은 수십 년 전 사람이 살다 떠난 방 한 칸짜리 황토집이다.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남의 땅에 집을 짓고 살던 농부가 떠나면서 빈집이 됐고 이후로 땅 주인이 집 주변에 천연잔디를 심고 농기구 창고로 쓰고 있다.

그림집 풍경의 비밀은 이 잔디밭에 있다. 잡풀 하나 없이 평평한 잔디밭 위에 조금만 눈이 내려도 폭설이 내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림집 아래 공터는 최적의 조망 포인트다. 지대가 높은 그림집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지붕 위로 구름이 걸친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저 멀리 눈으로 뒤덮인 태청산(해발 593m) 등 노령산맥이 선명하게 펼쳐진 모습이 일본 훗카이도나 아오모리의 시골 마을을 연상하게 한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이국적인 겨울 풍경을 찾아 오는 이들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그림집을 구경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집 아래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주변 풍경을 천천히 두 눈으로 감상하는 게 전부다. 자연이 빚어낸 풍경이니 따로 치러야 할 비용은 없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끼리 무언의 약속 같은 게 하나 있다. 다음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눈밭을 최대한 밟지 않는 것이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리는 게 불문율이다. 막상 집 앞까지 올라가 봐야 특별할 게 없다. 오히려 실망할 수 있으니 밑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시길.

사계절 푸른 축령산 편백숲은 겨울 눈이 내리면 운치가 더해진다. 눈이 쏟아지던 날 눈썰매를 타는 부자.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걷고 싶다면 서삼면 축령산 편백숲으로 가면 된다. 축령산 편백숲은 ‘조림왕’ 임종국(1915~1987) 선생이 평생을 일군 개인 숲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벌거숭이가 된 야산에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고 수십년간 가꿔서 국내 최대 편백림으로 키워냈다. 그 면적이 1,150㏊, 여의도의 약 두 배에 달한다. 2002년부터 산림청이 일부를 매입해 국유림으로 관리하고 있어 편백숲은 등산객 접근을 위한 산책로 등 최소한의 시설 외에는 숲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지켜가고 있다.

산림청이 조성한 축령산 산소길은 임 선생이 조림을 위해 만든 임도를 따라 이어진다. 총 4개 구간(23.6㎞)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구간이 모암마을에서 출발하는 1구간(9㎞)이다. 모암마을은 1구간 출발지이자 4구간(3.8㎞)의 도착지로 편백숲 한가운데로 곧장 연결되는 지점이다. 주차장에서 출발해 펜션단지인 금빛휴양타운을 지나면 곧바로 울창한 편백숲이 시작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자갈길과 데크길이 나란히 같은 방향을 향하지만 눈이 내린 뒤에는 자갈길이 더 안전하다.



축령산 편백숲에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뒤섞여 자라고 있다. 드론으로 내려다본 편백숲에는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숲길이 나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눈을 소복이 뒤집어 쓴 편백나무는 추위를 잊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다만 정상 등반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면 적당한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추천한다. 걷기 힘들 정도로 눈이 쌓인 곳이 많은 데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길이라 체력 소모가 크다. 모암휴게소와 매남삼거리를 들러 금곡사방댐분기점, 금곡영화마을까지 평소 같으면 3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눈길이라면 두 배는 더 예상해야 한다. 입구부터 울창한 편백숲이 펼쳐지기 때문에 산 아래에서도 편백숲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한 포근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단풍철 명소로 알려진 백양사는 눈이 내리는 겨울과 더 잘 어울린다. 경내에서 올려다본 흰 암벽 백학봉.


고즈넉한 설경을 볼 수 있는 곳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다. 흰 눈이 품은 산사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한 백암산(741m)은 단풍철 풍경으로는 전북 정읍시의 내장산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곳이다. 두 곳 모두 사계절 빼어낸 풍광을 자랑하지만 겨울 풍경만큼은 백암산이 압도적이다. 그 이유가 사찰 위로 올려다 보이는 백학봉(白鶴峰) 때문이다. 백학이 날개를 활짝 편 모습과 같다고 해 이름 붙여진 흰 암벽 주변이 눈으로 뒤덮이면 온통 하얀 눈 세상으로 변한다. 백학봉이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이다.

봉우리뿐만 아니라 산 이름과 사찰 모두 흰 백(白)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백암산 일대는 흰색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백학봉 아래 하얗게 눈이 쌓인 백양사는 그야말로 진경이다. 단풍철이라면 백양사에서 출발해 약수동 계곡을 거쳐 상왕·학바위로 내려오는 산행을 권하겠지만 눈 내린 겨울에는 비자나무숲까지 산책 삼아 가볍게 걷는 것을 추천한다. 비자나무 역시 편백나무처럼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다. 800년 전 각진국사가 심었다는 7,000여 그루의 비자나무숲에 들어서면 심신이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국내 최고령 갈참나무숲도 볼거리다.

장성호 주차장에서 펼쳐지는 풍경.


설경을 만끽했다면 백양사를 빠져나가는 길에 만나는 장성호 수변길에 들러 보자. 장성호는 황룡강 상류를 막아 건립된 거대한 인공 호수로 아무도 찾지 않던 곳에서 2017년 데크길이 깔리면서 인기 관광지로 떠올랐다.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수변 백리길 중 현재 개통된 구간은 총 5㎞로 수변길 전체를 다 도는 데 왕복 3시간 남짓이 걸린다. 방문자들 대부분의 목적지는 출렁다리다.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1시간 안에 옐로우출렁다리에 이어 지난해 개통한 두 번째 황금빛출렁다리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산 위에 설치된 출렁다리보다 짜릿함은 덜하지만 물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장성호 주변으로 ‘수변 백리길’이 50㎞ 이어진다. 현재 완공된 구간은 5㎞가량. 왼쪽에 보이는 다리가 첫 번째 출렁다리인 옐로우출렁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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