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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의 아트레터]인류학과 예술의 경계 다루는 '갈라 포라스 킴'

한국계 남미 작가…지속적 주목받아

기존 박물관 분류 시스템에 문제제기

작가의 재해석으로 유물 재탄생

뉴욕 아만트 파운데이션서 전시 중인 한국계 작가 갈라 포라스-킴의 조각 설치 작품들. ⓒAmant, Brooklyn, New York. Organized and produced by Amant in cooperation with KADIST, and curated by Ruth Este?vez and Adam Klein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Commonwealth and Council, Los Angeles. Photo: Shark Senesac




뉴욕 브루클린 이스트 윌리엄스버그에 무려 500억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비영리 미술기관이 있다. 바로 아만트 파운데이션 (Amant Foundation)이다. 주변이 공장지대라서 우뚝 솟은 세련된 현대식 건물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아만트 파운데이션은 캐나다의 부동산 부호 브루스 플랫(Bruce Flatt)의 부인인 론티 에버스(Lonti Ebers)가 지난해 설립한 곳이다. 에버스는 뉴 뮤지엄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고, 현재는 모마(MoMA)미술관의 이사회 소속이다. 미술계에서는 영향력 있는 컬렉터로 명성이 높다. 아만트 파운데이션은 설립자의 의도대로 실험적이고 아방가르한 작업의 예술가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며 새로운 미술 담론 형성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재단이 운영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젊고 유망한 작가를 분기별로 후원하고 있다.

현재 아만트 파운데이션에서는 국내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작가 갈라 포라스-킴 (Gala Porras-Kim)의 개인전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량(Precipitation for an Arid Landscape)’이 한창이다. 지난해 11월 20일에 개막했고 오는 3월 17일까지 열리는 전시다. 작가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해왔던 드로잉, 설치, 조각, 비디오 등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개막과 같은 시기 그녀의 오랜 전속화랑인 미국 서부 LA의 커먼웰스 앤 카운슬 (Commonwealth and Council) 갤러리에서도 동시에 개인전이 열렸다.

지난해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된 갈라 포라스 킴의 드로잉 작품들 ⓒ Credit: Gala Porras-Kim, A terminal escape from the place that binds us, 2020 Paper marbling on paper, human bones from Shinchang-Dong, Gwangju, 1 B.C, letter;Dimensions variable Commissioned by the 13th Gwangju Biennale in collaboration with the Gwangju National Museum


최근 몇 년간 포라스-킴이 참가한 전시들은 그에게로 쏠린 미술계의 주목도를 말해준다. 2017, 2019년 휘트니 비엔날레, 2019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LACMA), 2021년 광주비엔날레 등 글로벌한 미술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지난해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에서는 광주 신창동에서 발굴된 기원전 1세기 미라에 기반한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두 점의 대형 드로잉 ‘A terminal escape from the place that blinds us’를 통해 포라스-킴은 미라 당사자 의지와 상관없이 박물관의 소유가 돼 분류된 현상에 질문을 던졌다.

포라스-킴은 한국계 남미인으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태어났다. 그 후 미국 LA로 건너와 미술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 뿌리인 남미 문화학을 추가로 전공했다. 그가 미술 외에 다른 학문을 공부한 배경에는 부모 역할이 컸다. 문학과 교수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콜롬비아 각지로 연구 여행을 함께 다니며 자연스럽게 남미 문화와 고고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갈라 포라스 킴의 개인전이 한창인 아만트 파운데이션의 메인 갤러리 전경. ⓒGala Porras-Kim, Precipitation for an Arid Landscape, 2021-22. Amant, Brooklyn, New York. Organized and produced by Amant in cooperation with KADIST, and curated by Ruth Este?vez and Adam Klein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Commonwealth and Council, Los Angeles. Photo: Shark Senesac


포라스 킴의 작업은 문화인류학과 미술이 결합된 형태를 가진다. 작업의 전반적 주제는 박물관·미술관의 유물 분류법에 대한 의문과 그들의 본래 역할에 대한 반성적 접근이다. 박물관·미술관은 인류의 문화적 산물을 기록·보존·연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우리가 관람할 수 있는 유물들은 ‘기관’에 의해 선별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또한 선별된 유물들은 그 본래의 기능·의도와 상관없이 분류된다. 게다가 대다수 서양의 대형 박물관들이 보유한 유물들은 식민지 시대에 약탈을 통해 밀반입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사물들이다. 포라스-킴은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 아래 기관들의 분류법과 각 유물들의 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아만트 파운데이션에 전시된 갈라 포라스-킴의 드로잉 작품들.




이번 아만트 파운데이션에서는 소개된 작품들은 고대 멕시코 유물과 관련 있다. 2016년에 작가는 멕시코 중부에 위치한 고대 마야문명의 유적지인 치첸이차(Chichen Itza)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접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세기 초 미국 외교관인 에드워드 탐슨이 치첸이차에 묻힌 다량의 도자기·금·옥·암석으로 만들어진 유물들을 불법 반출해 하버드대학교 피바디 박물관 (Peabody Museum)의 수장고로 가져간 내용을 집중 조명했다. 2019년 포라스-킴은 하버드 대학교가 주최한 연구 장학금을 지원했고, 피바디 박물관에 기부한 탐슨 컬렉션에 접근할 권한을 요구했다.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포라스-킴은 문화적 맥락에 맞춰 수장고에 보관되어 온 유물들을 재배열했다. 메인 갤러리에 전시돼 있는 7점의 거대한 드로잉 ‘Offerings for the Rain at the Peabody Museum’은 작가의 이같은 연구가 시각화 된 작품들이다.

포라스-킴의 드로잉들은 과학 서적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미지들과 비슷하다. 유물들은 커다란 종이 위에 다채로운 색연필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그려진 유물들이 평면적으로, 선반 위에 나열된 모습은 조선시대의 책가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상관없이 그녀의 드로잉들은 역설적이게도 미술 기관들의 보관과 분류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드로잉들이 전시된 메인 갤러리에는 그간 작가가 유물에 접근하기 위해 기관들과 주고받은 편지, 유물에 대한 연구 수집물들이 함께 전시돼 한층 더 설득력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만트 파운데이션에 전시된 갈라 포라스-킴의 드로잉들.


포라스-킴은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역사가 바뀌면서 그 유물이 존재했던 영토의 주인도 바뀌었기에, 유물을 본래 자리로 되돌리기에는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상충한다. 설령 반환이 된다 하더라도 기존 박물관의 분류 방법대로 또다시 수장고에 먼지만 쌓인 채 보관될 가능성이 크다. 포라스-킴은 자신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에게 “유물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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