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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산업 재편 속 공정위의 '묻지마 원칙주의'[양철민의 경알못]

해운사 담합.. 해수부 반발 속에 과징금 부과

항공사 합병은 '조건부 허용'으로 가닥

플랫폼 기업 제재는 현재 진행형

美·中 등 강대국도 국가이익 우선하는데 '원칙만 고수한다'는 비판


**‘양철민의 경알못’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경제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경제를 잘 알지 못해’ 매일매일 공부 중인 기자가 쓰는 경제 관련 콘테츠 입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8월 ‘메이드인 USA(Made in USA)’ 라벨 규정을 확정하며 바이든 정부의 핵심 경제기조인 ‘바이 아메리카(미국산 제품 구매)’ 정책을 뒷받침 했다. 지금까지 FTC의 미국산 제품 라벨 단속 권한은 지침(Guidance) 수준이었지만, 당시 개정으로 1건당 최대 4만3280달러의 벌금부과가 가능해졌다. FTC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로, 자국이익을 위한 미국 부처간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일자리 증가는 물론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 방안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반면 한국의 FTC 역할을 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에 따른 따른 공급망 불안 및 경기침체 속에서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라는 원칙만 고집하며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 공정위는 담합을 이유로 이제 막 살아나기 시작한 해운업계에 9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한데 이어, 차세대 성장 동력이라는 플랫폼 산업 규제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는 등 업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 1조가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장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함’이라고 돼 있지만 ‘창의적인 기업활동 조장’과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 도모’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공정위의 제재가 결국 타국 소속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어느나라 공정위냐’는 볼멘 소리까지 나온다.

산업계 속 타들어 가는데.. 공정위는 ‘마이웨이’


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오는 9일 전원회의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의 기업결합을 심사한다. 공정위는 앞서 이들 기업이 보유한 공항 슬롯(시간당 이착륙 허용 횟수)과 운수권(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에 배분하는 운항권리) 일부를 반납하는 이른바 ‘조건부 승인’ 입장을 밝힌 만큼, 전원회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같은 조건부 승인은 ‘규모의 경제’ 형성을 어렵게 해 결국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공정위가 앞서 대한항공 측에 발송한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인천-LA·뉴욕·시애틀’을 비롯해 ‘인천-파리’와 ‘인천-바르셀로나’ 등 이른바 중복 ‘알짜노선’을 반납하도록 해 합병 시너지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대한항공 측이 이 같은 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대규모 인력 감축 및 투자감축이 불가피 하다. 실제 지난 2018년부터 3년간 대한항공의 누적 당기순손실은 1조139억원이며, 같은기간 아시아나의 누적 당기순손실은 1조5,168억원에 달한다.

무엇보다 이들 기업간 합병으로 주요 중복 노선을 반납할 경우 대형 비행기 운영 노하우가 부족한 국내 저비용항공사(LCC)가 이를 이어받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 항공산업의 글로벌 점유율 하락도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외국기업이 이들 기업이 반납한 공항 슬롯을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외국계 항공사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공정위가 지난달 부과한 해운사 과징금 962억원과 관련해서도 업계에서는 "실상을 모르는 조치”라는 반발이 여전하다.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2003년 12월부터 2018년 말까지 총 120차례에 걸친 운임 담합을 한 만큼 과징금 부과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업계에서는 해운법 29조에 해운업체간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는데다, 해양수산부에 몇차례 신고까지 완료했다는 입장이라 공정위 결정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이같은 공정위 결정은 최근 물동량 증가로 숨통이 틔이고 있는 해운업계에 치명타를 날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운시장에서는 화주와 선사간의 ‘갑·을구조’가 확고한데다 지난 2017년 ‘한진해운 파산’ 사태에서처럼 대형 해운업체 또한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수익이 불안정하다. 이번에 과징금을 부과받은 국적선사 중 12곳의 컨테이너선 영업이익률은 2003년부터 16년간 연평균 -0.4%에 불과해, 해운법이 명시한 공동행위가 불가피 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해외 경쟁당국이 한국 해운사를 상대로 과징금을 부과할 근거를 한국 경쟁당국이 제시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성욱 위원장 체제 들어 강화되고 있는 플랫폼 산업 규제에 대해서도 업계에서는 볼멘 소리가 상당하다. 공정위는 조 위원장 체제 들어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과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등으로 플랫폼 규제를 위한 날을 벼리고 있다. 반면 업계에서는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이 네이버의 ‘라인’을 제외하고는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못내고 있는데다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과의 경쟁도 버겁다는 입장이다.

자국 플랫폼 기업 규제가 타국 기업의 지배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실제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장의 최강자인 메타 또한 미국 경쟁당국의 제재에 이용자 수 증가폭이 정체되며 지난 3일(현지시간) 하루 동안 시가총액이 무려 2513억달러나 줄기도 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대표는 이와 관련해 “전례없는 수준의 경쟁에 직면했다” 중국의 동영상 서비스 업체인 ‘틱톡’을 가장 큰 위협으로 언급했다. 포춘을 비롯한 미국 언론에서는 중국 플랫폼 산업 견제를 위해 FTC의 제재 기조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간 합병 무산과 관련해서도 산업계에서는 ‘공정위 책임론’을 제기 중이다. 합병 실패는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의 ‘불허’가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지만, 공정위가 3년가까이 결론을 내지 못하며 ‘합병 여론’을 주도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누구를 위한 공정위인가.. 업계 물음표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공정위의 ‘엇박자 행보’와 관련해 조성욱 위원장 특유의 원칙주의를 그 배경으로 꼽는다. 서울대 교수 출신인 조 위원장은 지난 2018년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일할 당시 규제의 정당성을 주로 옹호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정무적 판단을 배제한 체 원칙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공정위를 이끌었던 ‘김상조 전 위원장의 부재’ 또한 이 같은 공정위의 행보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019년 6월부터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하며 플랫폼 규제 권한과 관련해 주요 부처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등 각종 정책에서 공정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반면 지난해 3월 김 실장이 전셋값 인상 논란으로 경질된 후 이호승 경제수석이 정책실장 자리에 오르면서, 청와대의 공정위 관련 영향력이 이전대비 줄어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처 관계자는“‘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과 자국 이익을 우선시 하며 각종 불공정 행위를 일삼는 중국 등만 보더라도 ‘원칙주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공정위원장 또한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이라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글로벌 산업 급변기에는 다소 유연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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