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의 악재들이 겹치면서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몰려오고 있으나 여야 정치권과 유력 대선 후보들의 태도는 너무나 안이하다. 한 전문가는 “나라가 풍전등화 위기에 처했는데 여야 양대 정당은 대선 매표용 돈 뿌리기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1일 밤 TV토론에서 소상공인 코로나19 손실보상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후보들은 경제 성장률 제고 방안 및 재정 건전성 악화 방지 대책에 대해선 겉핥기 토론에 그쳤다.
이에 앞서 이재명 후보는 이날 낮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피해와 관련해 “40조 원에서 50조 원으로 추산되는 국민의 미보상 피해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영업자·소상공인 332만 명에게 방역지원금을 1인당 30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코로나로 발생한 불량 부채 탕감과 신용 대사면까지 언급했다. 300조 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270여 개 공약을 쏟아낸 이 후보의 막판 퍼주기 약속이다.
윤석열 후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국민의힘은 이날 여당에서 제시한 16조 9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에 덜컥 합의했다. 윤 후보가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이) 어쨌든 돈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여당의 금품 공세에 질세라 당선 직후 자영업자를 상대로 ‘50조 원+α’의 지원 방안까지 제시했다. 제1야당이 여당의 포퓰리즘 공약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선심 경쟁에 가세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을 둘러싼 경제·안보 상황은 돈 퍼주기 경쟁이나 할 만큼 녹록지 않다. 우리 경제는 원자재 가격과 유가 급등에 따른 고물가, 고환율, 국가 부채 급증 등으로 백척간두에 서 있다. 미국발 인플레이션 공포로 경고등이 켜진 데다 석 달 연속 무역수지 적자와 외환보유액 감소의 먹구름까지 더해지고 있다. 안보 상황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을 만큼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경제의 기둥 격인 제조업에도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 68%가량의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에 미달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의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전운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올해 들어 일곱 차례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한 데 이어 추가 도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야가 당초 14조 원 규모의 정부 제출 추경안을 증액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이날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방한했다. 그동안 한국의 국가 채무 증가 속도를 우려해온 무디스는 2~3개월 후 한국의 국가신용 등급을 발표한다. 정치권의 돈 퍼주기 경쟁이 계속된다면 신용 등급 강등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잖아도 문재인 정부 5년간 누적 국가 채무는 415조 원 이상 폭증한 1075조 원을 넘기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D1 기준)도 올해 50.2%까지 올라간다. 일반정부부채(D2)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포함한 공공기관부채(D3)는 올해 1615조 원을 넘겨 GDP 대비 비율이 위험 수위인 76.8%에 이르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가 채무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한국의 재정이 이미 ‘건전성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도 퍼주기 경쟁을 벌이는 것은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더구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때 정부 지출을 늘렸던 주요국들이 긴축으로 선회하는 판국에 우리만 잇단 추경 편성으로 돈 풀기를 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처사다. 대선 후보들은 나라의 운명을 건 정치적 도박을 멈추고 경제·안보 복합 위기에 대비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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