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이 북미 진출을 선언하면서 한국 배터리 업계와의 ‘진검 승부’가 예상된다. 리튬·니켈 등 주요 원자재가 급등하는 가운데 중국 배터리 업계가 가격 경쟁력에서 앞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본격 공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공세에 맞서 K배터리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30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중국 CATL은 차세대 셀투팩(CTP) 기술로 양산하는 ‘기린 배터리’를 다음 달 중 출시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셀투팩은 모듈을 생략하고 셀을 바로 팩에 조립함으로써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셀을 넣도록 하는 기술로 비용을 낮추고 에너지밀도를 높여준다. 배터리 밀도가 높을수록 전기차 주행거리와 출력이 향상된다. LFP 배터리는 한국이 주도하는 하이니켈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밀도가 낮지만 CATL은 셀투팩 기술로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CATL의 신형 배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LFP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확대해온 CATL이 새로운 기술을 과시하고 있어서다. 통상 LFP 배터리 셀 가격은 하이니켈 배터리 대비 약 20%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중저가 전기차 라인업 위주로 LFP 채택이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 배터리 업계의 북미 시장 진출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배터리 업계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CATL은 북미 지역에 50억 달러(약 6조 원)를 투자해 연산 8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지을 계획으로 전해졌다. 쩡위췬 CATL 회장은 “미국 시장은 반드시 진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로부터 200GWh 이상의 배터리를 수주한 중국 궈쉬안도 미국 현지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 인비전AESC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 2025년부터 미국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2020년대 후반부터 미국 배터리 시장을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 배터리 3사가 미국 3대 완성차 업체와 협력을 강화하며 현지 시장을 장악한 상황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LG에너지솔루션, 포드는 SK온, 스텔란티스는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와 합작 투자에 나섰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미국 완성차 업계가 한국 배터리에 대한 선호도가 크다”면서 “2025년 이후 완성차 업체들의 선택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업체들은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며 격차를 벌리겠다는 구상이다. 파나소닉과 함께 테슬라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4680 배터리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4680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보다 대형화된 제품으로 에너지밀도는 5배, 출력은 6배 높이고 주행거리를 16% 늘린 것이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LFP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도 점차 약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2020년 초 대비 LFP 배터리는 256%, 하이니켈 배터리(NCM811 기준)는 103%의 가격 상승세를 보였다. 실제로 쩡 회장이 이달 초 열린 중국 양회에서 리튬 공급 보장과 리튬 가격 안정을 위한 법안을 제출하는 등 중국에서 리튬 품귀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건비가 비싼 북미 시장에서 중국이 배터리를 생산하게 되면 생산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셀투팩 기술을 통해 LFP 배터리의 성능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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