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정부 관료가 참석해 의견을 내는 ‘열석발언(列席發言)’ 제도에 대해 “통화정책 결정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행사나 간섭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1998년 도입된 열석발언제는 기획재정부 차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정부 관료가 한은 금통위 회의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 논란으로 2013년부터 사실상 사문화됐는데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속에 정책과 통화 당국 간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13일 국회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열석발언권에 대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서면 질의에 “한은과 정부는 거시경제금융회의나 거시정책협의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소통하고 있어 열석발언 제도의 효과가 크지 않다”며 “그 효과와 부작용, 주요국 사례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영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은 이런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열석발언제는 1998년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의 감독 기능을 금융감독위원회로 넘기는 대신 재무부 장관이 맡아오던 금통위 의장을 갖게 되자, 당시 경제관료들이 한은 견제를 위해 기존의 ‘열석’ 문구를 ‘열석발언’으로 명문화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1999년 네 차례에 걸쳐 행사된 뒤 중단됐다가 2010년 이명박 정부 들어 부활해 기재부 1차관이 2012년까지 매달 금통위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한은의 독립성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자 박근혜 정권 출범 직후인 2013년 정부는 열석발언권 행사 포기를 공식 선언했고 이후 줄곧 회의에 불참하고 있다.
이처럼 10년 가까이 사문화된 제도이지만 열석발언권은 한은과 기재부 간 갈등의 불씨로 작용해왔다.
2019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이주열 한은 총재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열석발언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홍 부총리는 열석발언권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참석해서 발언 기회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총재는 “행사도 되지 않고 실효성은 없는데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간섭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다”며 “차라리 제도를 없애는 게 좋겠다”고 응수했다. 홍 부총리가 “통화정책은 전적으로 한은과 금통위의 독립적 권한임을 잘 안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수년간 잠자고 있던 열석발언권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는 계기가 됐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추경호 후보자가 통화정책 당국과의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면서 열석발언권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추 후보자는 이달 10일 간담회에서 “한은법에 따르면 물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해야 한다는 미션이 있다”면서 “한은 총재와 경제 부총리가 만나는 게 더는 뉴스가 되지 않도록 자주 만나겠다”고 강조했다. 추 후보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평소 통화 당국과의 소통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후보자도 열석발언권에 비판적일뿐 정책 당국과의 조율에 열려 있는 입장이다.
한편 한은은 14일 금통위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총재 공백 속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 금통위가 4%대로 치솟은 물가와 미국의 공격적 긴축 행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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