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도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을 제한하는 학회의 지침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 3일 대한산부인과학회장에게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 등을 제한하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비혼인 진정인들은 보조생식술 시술을 이용해 출산을 시도했지만, 학회의 지침상 시술 대상이 부부로 한정돼 있어 시술을 받지 못해 차별을 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 따르면 체외수정 시술은 원칙적으로 부부(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는 경우 포함) 관계에서 시행돼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
학회 측은 제한 사유에 대해 "생명윤리법에 따르면 정자나 난자를 매매 목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부부관계인 경우 정자나 난자를 채취하거나 사용할 때 상대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결정이 가능한 혼인 상태에 있지 않은 사람보다 다른 목적으로 생식세포를 사용할 확률이 낮다"고 주장했다.
또 "체외수정 시술이 국내에 도입됐을 당시 법률로 명확하게 규정하기 힘든 사각지대가 많아 전문가들의 자율적인 윤리 지침이 필요했다"며 "윤리 지침 특성상 사회 변화 속도와 비교해 개정 속도가 느릴 수 있으나 최근에는 사실혼 관계 부부를 인정하는 등 사회 흐름을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비혼 출산과 관련한 법률적 정비와 사회적 수용성 제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학회의 문제의식은 인정하지만, 개인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하므로 지침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현행 관련 법에서 정한 가족의 범주를 고려해도 출산을 통해 혈연관계가 확인되는 모(母)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혼 출산이) 가족의 범주를 혼란하게 할 요인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학회가 법률로 위임받은 바 없는 사안에 대해 자의적인 기준으로 이를 제한하는 조치를 둔 것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비혼 여성이 혼인 상태에 있는 사람보다 매매 목적 등 다른 목적으로 생식세포가 사용할 확률이 높다는 학회의 주장에 대해서는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배우자 동의 절차는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 국한된 규정이므로 보편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비혼모가 양육을 포기할 경우 이에 대한 사회적 대비가 없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자발적 비혼모든 비자발적 비혼모든 한부모 가족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달리 볼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비혼 출산 후 여러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자발적으로 자기 삶의 형태를 설계하고 추진하는 경우가 비자발적인 경우보다 양육 의지와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강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비혼 출산을 제한할 합리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을 포함해 다른 주요 국가에서는 정부 정책이나 법률상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을 금지하는 규정은 따로 없는 추세다.
보건복지부는 "비혼자 보조생식술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령은 없다"고 인권위에 회신했고, 여성가족부는 "비혼출산·동거 등 다양한 방식의 가족 형성과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단독출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인하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법·윤리·의학·문화적 쟁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모든 여성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보조생식술 시술을 받을 수 있고, 영국은 23∼39세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할 수 있다. 스웨덴은 2015년부터 비혼 여성의 정자 기증을 허가하고 있으며 덴마크도 혼인 여부나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18∼40세 모든 여성이 공공의료 영역에서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