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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청와대 본관] 품격을 짓고 국격을 담다

■청와대 본관

국제사회서 위상 높아진 서울올림픽 계기

'일제 산물' 경무대 대신 91년 신청사 준공

화려한 팔작 지붕에 취두·돌란대·소매돌

철근콘크리트 현대기술로 전통건축 재현

호평에도 일각선 '콘크리트 한옥' 비판도

문화공간 변신해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북악산을 등지고 앞에는 경복궁, 양옆으로 낙산과 인왕산을 끼고 지어진 청와대 본관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높아진 한국 위상과 민족 정기의 맥을 되살리자는 의미를 담아 1991년 4월 완공됐다. 연합뉴스




‘금단의 성역’ ‘권부의 심장’….

대지 면적 25만 3505㎡로 축구장 35개 넓이의 청와대를 수식하던 표현이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등지고 좌청룡 우백호로 낙산과 인왕산을 낀 자리에 들어선 청와대는 시대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과거 조선시대 왕궁 경복궁의 후원 역할을 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총독의 관저가 들어서 있기도 했다. 해방 이후 해당 관저는 미군정 사령부 존 리드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되다가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청와대로 이름이 바뀌며 대통령 집무실로 활용됐다.

지금의 청와대 본관은 노후된 경무대(옛 조선 총독 관저)를 대신하기 위해 1991년 4월 새롭게 준공된 건물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주말마다 건설 현장을 찾을 만큼 국가 차원에서 공을 들였지만 정작 건물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각 방의 용도를 숨기기 위해 방 이름을 기호로만 표시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 썼고 완공 이후 대부분의 설계 자료를 폐기했던 탓이다.

‘국격 회복의 필요성’과 ‘전통 건축의 현대화’라는 숙제를 안고 태어난 청와대 본관은 거센 산세와 끝이 미묘하게 곡선으로 말려 올라간 지붕선이 어우러지면서 한옥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짙은 청색 기와로 마감된 지붕 색감은 금강송을 끼고 펼쳐진 넓은 잔디 마당과 함께 전통 건축의 맛을 더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콘크리트 한옥’이라 폄하하며 전통성을 부정하기도 했다. 상반된 평가를 받아온 건물은 올해 5월부터 일반 국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새로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 올림픽으로 높아진 국격…본격화된 새 청사 계획=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정부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은 일제강점기 청와대 터에 지어진 경무대를 사용했다. 하지만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는데 국빈을 식민 시대에 지어진 건물에 초대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국빈들이 한국을 기억하고 돌아갈 수 있는 새로운 본관을 짓기로 결정한다. 기존 경무대 건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1995년 8월 15일 광복절 철거됐다.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을 설계한 이형재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고문은 당시를 회상하며 “올림픽 개최 이후 1988년 말부터 한국을 기억할 수 있는 새 대통령실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는 곧 신청사를 짓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며 “한국의 국격과 상징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정림건축 설계팀과 고민하던 중 청와대로부터 ‘한옥으로 하라’는 지침이 내려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준공 후 이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재 정림건축 고문은 한옥의 현대적 재현을 위해 청와대 본관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으로 지붕 선을 꼽았다. 조선 궁궐 등에 쓰인 팔작지붕을 중심으로 하되 위압감을 낮추고자 1층을 기단 처리하고 현관채를 주 출입구로 옮겨 배치했다. 연합뉴스


◇2000여 평 한옥…신소재로 해법을 찾다=큰 방향은 정해졌지만 이는 곧 새로운 문제로 귀결됐다. 건축법 시행령상 한옥은 기둥과 보가 목구조 방식이고 한식 지붕틀을 사용해야 한다. 마감재 또한 볏짚·목재·흙 등 자연 재료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8476㎡(2564평)에 달하는 본관 건물의 규모와 안전성을 고려했을 때 자재를 나무로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정림건축 설계팀은 ‘전통 건축의 현대화 해법’으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철골과 콘크리트·신소재를 활용하되 모두 국산 자재 또는 국산 제품으로 하고 조선의 5대 궁궐 등을 최대한 참고해 한옥의 상징을 재현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고문은 “땅을 알면 그 해법이 보인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기에 학생 때부터 한국의 고건축 답사를 자주 다녔다”며 “조선의 5대 궁궐과 고사찰·서원 등에 쓰인 한옥의 상징을 추리고 나니 두려움보다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탄생한 본관은 한옥 건축에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20회 이상의 실무 회의를 거치면서 궁궐이나 사찰 등에 주로 쓰여온 팔작지붕이 국격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절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기와 색상은 경무대 시절 청빈한 푸른색 기와에서 유래한 청와대의 명칭을 반영해 100년의 내구성을 가진 청기와 15만 장을 도자기 굽듯 구워 지붕을 올리기로 했다.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2층 구조의 본채 외에도 양옆에 관료들과 대규모 회의가 가능한 세종실과 충무실 등 별채 두 동을 둬 실용성을 높였다.



이 고문은 “지붕 선이 잘못되면 일본이나 중국 건축물처럼 보일 수 있다”며 “목재로 지을 때는 멀리서 보며 들고 낮추고 하면서 추녀 선을 잡지만 본관은 철골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다 보니 도면으로 비례를 찾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를 방문한 시민들도 지붕 선의 심미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팀 회의 및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진 스케치만 당시 1000여 장에 달했다고 한다.

이형재 정림건축 고문이 보유한 청와대 본관 설계 자료 중 일부인 서까래(왼쪽부터), 취두, 살대, 돌란대, 소매 돌 스케치. 청와대 설계 자료는 보안을 이유로 완공 이후 대부분 폐기됐다. 사진 제공=이형재 정림건축 고문


◇현대 건물 곳곳에 녹아든 옛 궁궐의 상징=이외에도 곳곳에 전통 한옥의 상징이 배어나도록 했다. 지붕 중앙 마루인 용마루 양 끝에는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모습을 양각한 취두를 본따 올렸다. 난간에 쓰인 돌란대(난간대) 또한 경복궁 근정전의 팔각 돌란대를 차용했다. 계단 옆을 구름과 태극무늬로 장식한 소매 돌은 경운의 상서로운 기운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는 창덕궁 주합루 월대 계단 소매 돌을 녹여냈다. 본관 문살 또한 조선의 주요 궁궐 정전에 쓰인 꽃무늬 살대를 쇠로 살려 덧댔다.

이에 더해 큰 한옥 스케일이 자칫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관 1층을 땅보다 조금 더 높게 기단 처리했다. 현관채 또한 초안에는 밖에 두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주 출입구로 옮겨 배치해 자연스러움을 살렸다. 지붕의 갈비뼈 역할을 하는 서까래와 저고리 소매 끝처럼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려주는 부연은 시멘트를 보강한 유리섬유보강시멘트(GRC)라는 당시 신소재를 개발해서 조립했다. GRC는 시멘트보다 가볍다는 장점이 있다.

정문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마당에는 잔디 마당과 잘 가꿔진 반송 22그루를 심어 과거 외국 사신이 왔을 때 국가 공식 행사가 열리던 궁궐 마당의 기능을 살렸다. 삼청동 진입로에는 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을 짓고 5~6m의 지형 단차를 고려해 대통령이 보안 구역을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춘추관 2층으로 들어올 수 있게 의도했다.

이형재 정림건축 고문은 청와대 본관에 대해 ‘현대 전통 한옥의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왼쪽은 1982년 북한 평양에 지어진 ‘인민대학습당’. 사진 제공=이형재 정림건축 고문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오다=그렇게 완성된 청와대 본관은 후대에 와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전통의 현대화’라는 호평부터 ‘콘크리트 한옥’이라는 비판이 양립했다. 이 고문은 “북한에서는 이미 이 같은 양식을 민족 건축 양식으로 분류해 전통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며 해당 논란을 일축했다.



현재 청와대는 정부의 일반 개방으로 하루 평균 2만 4000여 명의 시민이 오가는 장소로 변모하며 새로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향후 활용 방안도 달라진다. 대통령실은 8일 학계 등 민간 전문가들을 불러 청와대 활용 방안에 대한 회의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달 20일 청와대 미래 청사진에 대한 설명회를 통해 청와대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청와대를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는 근대 역사 문화 공간 등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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