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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10년 갈등에 접근하는 정부의 자세

송주희 생활산업부 차장





“분위기 몰이용으로만 쓰이고 마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대형마트 의무 휴업 폐지’와 관련한 국민 제안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이 내용을 취재하면서 느낀 마트 업계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10년 넘게 성장의 발목을 잡아온 규제이건만 ‘마냥 환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큰 취지는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기대보다는 우려나 아쉬움, 의구심을 표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규제 폐지에 반대하는 쪽이라면 모를까 10년 넘게 족쇄를 풀어달라고 주장해온 업계에서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어쩌면 당연했다. 오랜 시간 유통 기업과 전통시장, 소상공인, 그리고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팽팽하게 대립해온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도 안일했기 때문이다.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골목상권 보호와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위해 매월 이틀을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로 지정하고 영업시간도 오전 0시부터 10시 사이 범위에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규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 속에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업계의 대립은 여전하다. 대형마트는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e커머스 업체, 대형 식자재 마트와 역차별당하고 있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반면 소상공인 및 노동 관련 단체들은 골목상권 보호와 근로자 휴식 보장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은 6월 국민 제안 코너를 신설하고 1만 3000여 건의 민원을 받아 정책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10건에 대해 지난달 31일까지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이 10개 목록에 포함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 폐지’는 최종 투표 결과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당초 방침대로라면 이 제안은 윤석열 정부 국정에 반영돼야 했지만 대통령실은 ‘어뷰징(중복 전송)으로 톱3를 제안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소비자의 의견이 분위기 몰이용이나 논쟁의 재료로만 이용될까 걱정’이라던 업계 관계자의 불안한 예감은 안타깝게도 며칠 안 가 ‘그럼 그렇지’ 하는 현실이 됐다.

사안의 중대함에 비해 정부 접근은 서투르고 세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중복 전송에 대한 고려는 물론이요, 투표 사이트의 구성 또한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투표는 안건명에 짧은 설명만 붙은 채 진행됐다. 의무 휴업 폐지의 경우 ‘의무 휴업 규정을 폐지하고 기업 자율에 맡김’이라는 한 줄이 전부였다. 물론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국회에서 다뤄져야 하지만 투표 페이지는 이슈에 대한 기본 정보 제공이 턱없이 부족했다.

대통령실, 국민 제안, 투표…. 하나하나 무게 있는 단어들이다. 그 이름으로 투표에 올린 ‘대형마트 의무 휴업’ 역시 유통 산업에 있어 중요한 이슈다. 안일한 접근으로 인기 투표처럼 기름 붓고 활활 태우다 끝낼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재 이 문제는 국무조정실 규제심판회의에서 다시 논의되고 있다. 18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받았고 24일 2차 규제심판회의를 열어 주요 쟁점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이번에는 ‘그럼 그렇지’가 아닌 ‘이번에는 다르네’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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