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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독일의 성공 스토리를 기억해야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호스트)

2차 대전 이후 걸출한 지도자 배출

분리된 국가 통합시켜 강대국 부상

러 제재에 유럽국 동참도 이끌어

獨 민주적 역량·지도력 무시 못해

파리드 자카리아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부정 편향성’이 강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파키스탄의 홍수와 중국의 가뭄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희소식을 흘려보낸다. 특히 그것이 단일 이벤트의 형태로 오지 않으면 놓치는 경우가 잦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긍정적인 추세는 독일의 민주적 역량과 특성 및 지도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이번 주 프라하에서 나온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연설 때문이었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한 우리는 끝까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숄츠 총리는 이어 더욱 강력하고 통합된 유럽을 지지한다는 말로 유럽의 민주적 가치와 이상을 염원하는 새로운 멤버의 유럽연합(EU) 가입을 환영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가 밝힌 내용은 독일 외교정책의 일부로 ‘차이텐벤데’, 즉 ‘시대적 전환’이라는 한마디 말로 응축된다.

한편에서 보면 이건 정말 극적인 변화이지만 1945년 이래 유럽과 세계를 향해 독일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자세이기도 하다. 유럽연합의 최대 기여국이자 민주와 진보라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독일이 유럽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지 않다면 지금의 세계가 얼마나 다르게 보일지 생각해 보라. 오늘날의 유럽이 독일이라는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대가로 독일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있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10배가 뛰었다. 내년도 전기료 역시 최근 수년간의 평균 가격에 비해 15배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KGB 요원으로 동독에서 근무한 탓에 독일 사정에 정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독일에 대한 가스 수출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굴복하지 않았다.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독일은 그린테크놀로지 투자를 늘리고 액화천연가스(LNG) 구입과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 및 마지막 원전 3기의 가동 시한 연장을 검토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독일 업계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려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경쟁 업체와 자원을 공유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애초 숄츠는 그의 전임자인 앙겔라 메르켈의 무게감과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 경량급으로 간주됐다. 사실 메르켈 전 총리도 집권 초기에는 숄츠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으나 오랜 시간에 걸쳐 국정 운영 능력을 키웠고 결국 독일 사회 전체의 존경을 받는 거인으로 성장했다. 한때 모스크바에 지나치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메르켈 전 총리는 앞장서 이를 규탄하는 한편 유럽 국가들을 설득해 야심 찬 경제 제재 조치를 끌어냈다. 그는 또한 시리아 난민 위기에 맞서 세계 각국의 대응을 이끌었고 “우리는 해낼 수 있다”며 대규모 난민 유입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자국민을 안심시켰다.

우리는 늘 현대의 독일과 독일의 지도력을 과소평가한다. 독일연방공화국은 첫 총리인 콘라트 아데나워를 비롯해 빌리 브란트에서 헬무트 슈미트와 앙겔라 메르켈, 그리고 바라건대 현직인 숄츠에 이르기까지 2차 대전 이후 걸출한 지도자들을 줄줄이 배출했다. 솔직히 지난 70년간 독일만큼 지도자 복을 풍성하게 누린 국가가 있었던가.

필자는 엘리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헬무트 콜에게 쏟아졌던 ‘촌뜨기’라는 조롱을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독일 통일의 과업을 완수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통일국가를 서방 진영에 단단히 묶어두는 위업을 달성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은 국가 통합을 위해 무려 2조 유로에 달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거액을 과거의 동독 지역에 투입했다.

1945년 당시만 해도 패전국 독일이 지금처럼 강대국이 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쟁으로 전국이 폐허로 변했고 도시들은 완전히 파괴됐으며 독일인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국에서 추방당한 1200만 명의 독일계 주민들이 한꺼번에 국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무엇보다 전후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라는 유산으로 처참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독일은 과거를 극복할 묘책을 찾아냈고 헨리 키신저의 말대로 “비정상적인 기억력을 지닌 정상적인 국가”로 우뚝 섰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어떤 정책 아이디어보다 큰 차이텐벤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신선한 이야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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