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뷰티기업 아모레퍼시픽이 이번엔 제대로 태평양을 건넜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미국 화장품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낸다. 사명인 '아모레퍼시픽'(AMORE PACIFIC)에서 볼 수 있듯 아모레퍼시픽에게 북미 시장 석권은 사명(使命)이자 숙명이다. 특히 중국 시장의 위기가 커지면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해외 영토 넓히기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이달 1일 미국의 럭셔리 클린 뷰티 브랜드 '타타 하퍼'를 운영하는 타타 내츄얼 알케미의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를 위해 조달한 자금은 1681억 원이다. 그동안 아모레퍼시픽이 북미 화장품 업체에 일부 지분을 투자한 적은 있지만, 아예 인수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 전체 브랜드로보면 2011년 프랑스 니치향수 브랜드 '구딸' 이후 두 번째다.
타타 하퍼는 미국 화장품 시장에서 각광받는 클린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는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다. 특히 유전자 조작 원료(GMO) 등이 포함되지 않은 100% 자연 유래 성분만 사용해 북미 시장에서 탄탄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네타포르테·컬트 뷰티 등의 온라인 채널 및 세포라·니만마커스 등 800개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안세홍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타타 하퍼를 북미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브랜드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매출 30% 중국서 나와…의존도 낮추기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경쟁사인 LG생활건강과 비교해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해외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시장이 흔들리면서 행보가 바뀌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단체 관광객이 물 밀듯이 들어오던 2010년대 초반 호황기를 누렸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휘청이기 시작했다. 2017년 5964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3434억 원으로 급감했다.
원인으로는 높은 중국 의존도가 꼽힌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이다. 전체 매출로 넓혀봐도 30%에 달한다. 중국의 한한령으로 단체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면세점 매출이 타격을 입은 데다 현지에서 차이나뷰티(C뷰티)가 급성장하며 이니스프리·에뛰드 등 중저가 브랜드가 힘을 잃은 결과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중국에서 에뛰드를 철수하고, 이니스프리 오프라인 매장 수도 줄여가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설화수 모델 송혜교→로제 교체 초강수
중국에서 빠진 매출은 북미에서 채운다는 목표다. 미국은 전 세계 뷰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중요한 거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은 1986년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창업주인 서성환 선대회장이 1960년 프랑스 파리로 유럽 시찰을 다녀온 뒤 "태평양 넘어까지 한국의 미를 알리겠다"며 보인 글로벌 첫 행보였다. 이후 2002년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을 현지에 선보이며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꿈을 키웠지만, 그동안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올 상반기 아모레퍼시픽의 북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6% 성장했다. 방탄소년단(BTS)과 협업한 라네즈 '립 슬리핑 마스크'가 히트를 친 데다 스킨케어에 대한 북미 소비자들의 관심도가 증가하면서 설화수 매출도 동시에 뛴 효과다. 설화수는 미국과 캐나다의 고급 백화점에 입점한데 이어 뉴욕과 LA,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포라 매장을 중심으로 매장을 넓히고 있다. 아울러 설화수는 배우 송혜교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글로벌 앰버서더로 걸그룹 블랙핑크의 로제를 발탁했다. 앞으로 중화권보다 글로벌 MZ세대를 겨냥하겠다는 아모레퍼시픽의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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