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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 핵공격’ 법에 못 박은 北…韓, 전술핵 확보로 ‘핵군축’ 협상 대비해야

[민병권의 군사이야기]

김정은 시정연설서 "핵포기 없다" 선언

北, '핵보유법' 제정해 핵무력 강화 천명

'령토완정' 입법화로 '핵 적화통일' 노려

핵무기 수백기 만든 뒤 한미군축 압박 우려

韓, 전술핵 재배치해 대북 협상력 높여야

'나토식 핵공유'도 차선책으로 고려할 때

북한이 지난 3월 25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고 있는 모습. 북한은 한미동맹을 와해하기 위해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4월 17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공개한 '신형 전술유도무기'의 시험발사 모습. 북한은 이에 대해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을 강화하는 의의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시정연설을 통해 한국 및 국제사회의 거듭된 만류에도 핵개발을 절대 포기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자칭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유사시 선제적 핵공격을 실행할 수 있음을 법으로 못 박았다. 아울러 핵무력을 질적, 양적으로 갱신하고 강화하도록 법제화했다.

이로써 북한은 앞으로 ‘7~8차 핵실험 강행 → 핵보유국 지위의 국제적 인정 추진 → 대남·대미 군축협상 → 주한미군 감축·철수 압박 → 미·중·러의 한반도 관여 배제 → 핵 강압을 통한 북한 주도의 통일’의 수순을 밟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 및 차기 정부의 임기인 2020년대 중반~2030년까지 수백기의 핵무기를 확보해 영국, 프랑스 수준의 핵전력을 갖추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의 관여를 배제하면서 핵 협박을 통해 한국을 북한의 영향력 하에 통제하려할 우려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북한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핵 포기’ 불가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이제 외교적 수단만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졌다. 군사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 접근방식으로 북한의 핵 강압전략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핵 위협을 앞세운 북한의 대남·대미 군축협상 시도 가능성에 대비야 한다. 미국 전술핵 등 핵전력의 한반도 재배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혹은 나토식 핵공유 방식처럼 주변 우방국들과 미국의 핵전력을 점진적으로 공유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북한은 핵무력 강화로 한미 동맹을 약화·와해시키는 실익을 노릴 수 없게 된다. 중국, 러시아로서도 미군 전략자산의 역내 전진배치를 촉발하는 북한의 핵보유를 더 이상 방기하기 어렵게 돼 대북 제재에 다시 동참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핵실험 경과 및 전망/서울경제DB




◆‘핵 적화통일’ 야욕 법제화

북한의 이번 김정은 시정연설 및 핵 보유 법제화(이하 ‘핵 보유법’)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4가지 특징이 명확히 드러난다. 첫째, 핵무력이 주권 뿐 아니라 ‘령토완정(領土完整, 영토를 완전히 갖춤)’ 차원의 기본역량임을 법에 명시해 핵 위협을 통한 한국 병합이나, 대남 핵전쟁을 시도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핵을 내세워 한반도를 ‘적화통일’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힌 셈이다.

둘째, 법에 ‘신축성 있고, 목적지향성 있는 핵무기사용전략’이라는 문구를 명시하고, 시정연설을 통해 ‘전술핵 운용공간을 부단히 확장’, ‘핵전투태세를 백방으로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는 북한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위력과 운용방식의 핵무기들을 계속 개발할 것임을 뜻한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전술핵 무기를 지상(이동식 및 고정식 발사대) 뿐 아니라 바다(잠수함) 등에서도 쏠 수 있도록 핵무기 발사체계를 다변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군의 고위 관계자는 “소형화된 전술핵 개발을 위해 7차 핵실험을 추진할 것임을 재확인한 것이며 7차에서 핵실험을 끝내지 않고 추가적인 핵실험을 단행할 수 있음도 밝힌 셈”이라고 진단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조만간 인공위성을 위한 평화적 우주로켓(우주발사체) 발사라고 주장하면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서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여러 발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중형잠수함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북핵을 억제할 3축 체계의 핵심전력인 국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가칭 ‘현무4-4’)이 지난 2021년 9월 15일 서해 해상에서 신형 잠수함 '도산 안창호함'에서 수중 발사된 뒤 성공적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ADD 제공영상 캡처


셋째, 북한은 핵무기 사용 조건의 문턱을 입법을 통해 대폭 낮췄다. 특히 상대방이 아직 공격을 하지 않았음에도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법에 못 박았다. 사실상 ‘선제 핵공격’을 핵 독트린으로 못박은 것이다. 아울러 상대방의 핵무기 뿐 아니라 북한 국가지도부에 대한 비핵무기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군의 한 영관급 장교는 “북한의 도발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우리 군의 ‘3축 체계’ 중에서도 ‘킬체인’과 ‘대량응징보복(KMPR)’를 무력화하려는 협박”이라고 평가했다. 자위적 차원의 선제타격인 킬체인과 대규모 반격인 KMPR은 우리 군이 보유한 초정밀·고위력 재래식 무기 등으로 유사시 적의 도발원점 및 지휘부를 겨냥해 북한의 공격 위협을 사전에 억제하거나 사후 확전을 억제하는 작전개념 및 무기체계다.



넷째, 북한은 선진적 핵보유국들과 같은 핵독트린(지휘통제 체계 명시, 사용원칙·조건 천명, 핵무기의 안전적 관리·보호 강조)을 이번 법제화를 통해 흉내냈다. 향후 국제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받거나, 최소한 핵무장을 암묵적으로 용인 받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지난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입구 등을 폭파해 봉쇄하는 모습. 북한은 올해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를 복구해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 vs 나토식 핵공유’ 모색할 때

지난 5월 출범한 한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들과 같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계승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국내에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CNN은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터뷰 보도에서 “(윤 대통령이) 한반도의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은 배제했다”고 전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5월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미는) 전술핵 배치에 관해 논의하고 있지 않다”며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핵우산 등)를 강화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북측에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게 담대한 구상의 요체다.

그러나 북한은 나흘 뒤인 8월 19일 김여정 노동장 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담대한 구상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혹평했다. 또한 이번 김정은 시정연설을 통해 핵을 대부로 개선된 경제생활환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딱 잘라 거부한 것이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모습. 김 부부장은 앞서 지난 8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담대한 구상’을 공개 제안하자 나흘만에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조롱하는 담화를 내기도 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한 예비역 장성은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김정은 정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내세운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현재로선 수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김정은 정권은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실패했던 담판을 미국의 차기 정부나 차차기 정부와 시도하기 위해 최소한 2024년 미국 대선 때이나 2026년의 차기 정부 중간 선거까지는 핵 역량 강화에 전력질주해 대미 협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이 2024년 이후 차기 미국 정부와 담판을 시도할 경우 핵을 앞세워 한미에 군축협상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핵보유는 포기하지 않는 대신 일부 핵 보유량을 줄이는 조건으로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 및 철수, 우리 국군의 재래식 대북핵억제전력(고위력 탄도미사일 등)의 감축을 요구할 수 있다.

미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트라이던트-2 D5'가 지난 2016년 8월 31일 플로리다해안 인근 바다에서 핵잠수함 메릴랜드호를 통해 시험발사되고 있다. 이날 발사된 미사일에는 탄두가 실리지 않았으나 유사시 저위력핵탄두 등이 탑재될 수 있다./사진제공=미 해군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북한의 핵군축 요구에 맞서 한미도 ‘협상의 판돈’을 미리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 다른 예비역 장성은 “한미가 대북 핵협상을 위해 전술핵의 ‘조건부 한반도 재배치’를 검토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국내에 들여오면 북한이 미래에 핵군축 협상을 추진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다시 전술핵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킨 현재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수준에 불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렇게 되면 북한이 핵 군비증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안보적 실익은 거의 무효화되고, 핵개발의 경제적 비용만 눈덩이처럼 떠안는 결과에 직면하게 돼 결국 스스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에 대해 외교적 부담을 느껴 주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 대안으로 한국이 주변의 우방국들과 함께 미국의 핵을 함께 운용하는 ‘나토식 핵공유’ 방식을 추진하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잠재적 핵공유국이 될 주변 우방국들과의 외교안보협력을 다방면으로 강화해 향후 집단안보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대한민국 스스로 독자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다만 이는 자칫 중국이나 북한이 의도하는 ‘한미동맹 와해’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NPT(핵확산금지조약)을 주도해온 중심국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핵무장을 용인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신 자국이 가진 핵우산으로 (유사시 미국 본토처럼 한국을 방어하는) 확장억제를 공약해 한미동맹을 강화해오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앞서서 핵무장론을 공론화하면 핵우산을 매개로한 한미동맹에 틈이 발생하게 되고, 도리어 북한 핵보유를 한층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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