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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지하 1km 거대 실험실…우주 기원 '암흑물질' 신비푼다

[정선에 세계 6위급 지하실험실 'IBS 예미랩' 준공 ]

예미산 지하 3000㎡ 규모 조성

기상청·항우연·대학 집결해 연구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 설치

MIT와 중성미자·암흑물질 탐색

예미산이 거대 차폐장치 역할 담당

외부입자 교란 100만분의1로↓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 실험실 ‘예미랩’의 내부. 사진=김윤수 기자




“내려갑니다. 안전모·안전화를 반드시 착용해주세요.”

케이지(광산용 엘리베이터)가 요란하게 작동했다. 아파트보다는 공사 현장에서 쓰이는 승강기에 가까웠다. 도착지는 승강장에서 600m, 산 정상에서 1000m 깊이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지하 실험실 ‘예미랩’. 잠실 제2롯데월드(555m)보다 깊이 이동한 셈인데,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4배 빠른 속도(초속 4m) 덕에 걸린 시간은 3분에 불과했다. 케이지 문이 열리자 동굴에 온 듯 서늘한 공기와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느껴졌다. 총 3000㎡ 부지에 크고 작은 실험 공간이 개미굴처럼 자리 잡은 예미랩이 모습을 드러냈다.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실험실 예미랩의 내부. 사진=김윤수 기자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예미산 지하에 있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예미랩이 5일 준공됐다. 암흑물질·중성미자 등 정밀한 입자 검출 실험을 위해 미국·중국·일본·캐나다·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6위 규모로 지은 실험실이다. 예산 309억 원을 들여 5년간 공사했다. 입자를 검출할 때 외부 다른 입자의 교란을 100만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거대한 차폐 장치 역할을 예미산이 해준다고 한다.

강원 정선군 예미산과 예미랩. 사진 제공=IBS


미국·일본·캐나다에서는 지하 실험 성과가 각각 두 번이나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IBS는 기존 강원 양양 실험실(300㎡)보다 10배 큰 이곳에서 내년부터 첨단 실험을 본격적으로 수행한다.

준공을 며칠 앞둔 지난달 29일 기자가 직접 예미랩에 내려가 봤다. 승강장이 있는 예미산 자락을 오르는 길에는 군데군데 ‘검은 모래’가 쌓여 있었다. 철광석이다. 이곳은 한덕철광 사업장이기도 하다. 정부는 예미랩 구축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갱도를 갖춘 광산 인프라를 활용했다. 이곳에서 600m 길이의 ‘수직갱도’, 800m 길이의 ‘수평갱도’를 차례로 지나야 예미랩에 도착할 수 있다.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 실험실 ‘예미랩’ 승강장으로 가는 길. 인근 한덕철광에서 나온 철광석이 쌓여 있다. 사진=김윤수 기자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 실험실 ‘예미랩’ 승강장. 사진=김윤수 기자


무사히 내려온 수평갱도도 실제로는 12도의 경사가 있어 제법 가팔랐다. 폭과 높이 각각 5m, 벽은 석회동굴처럼 울퉁불퉁하면서도 만지면 미끄러운 느낌이 났다. 암반 붕괴를 막기 위해 15㎝ 두께의 콘크리트와 코팅제를 발랐기 때문이다. 벽과 천장에는 배관과 전선들이 깊은 곳까지 연결돼 구성원들에게 물과 전기를 공급한다.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 실험실 ‘예미랩’의 내부. 사진=김윤수 기자




예미랩이 개미굴이라면 각 실험실들은 개미방에 해당하는 ‘터널’에 자리 잡았다. 총 14곳인데 1곳은 40명이 3일 동안 생존할 수 있는 대피소로, 나머지 13곳이 실험실로 사용된다. 여왕개미가 살 법한 가장 큰 터널은 지름 20m, 높이 24m의 원기둥 공간이다. 이곳에 딱 들어맞는 물탱크와 입자가속기로 구성되는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가 들어선다고 한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가 물탱크 속 섬광물질과 충돌하면서 내는 빛을 포착해 중성미자의 존재를 확인할 계획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함께한다.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 실험실 ‘예미랩’의 내부. 중성미자를 검출할 LSC 실험실이 들어설 거대 터널. 사진=김윤수 기자


중성미자는 예미랩의 핵심 연구 주제다. 현재 유일하게 설치가 완료된 아모레(AMoRE) 실험실도 이 입자 검출에 도전한다. 전자와 함께 12가지 기본 입자(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최소 단위의 입자)를 구성하는 중성미자는 질량과 크기가 매우 작다. 전자처럼 전하를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검출이 힘들다. 정확한 질량도 모르는 형편이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은 물론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데도 중성미자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히면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아모레 실험을 준비 중인 IBS의 이재승 박사는 “중성미자 검출을 위해서는 외부 입자의 차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노이즈를 일으키는 ‘뮤온’ 입자는 예미산을 통과하면서 그 양이 1억분의 1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70㎝ 두께의 차폐체, 성인 키 2배 크기의 특수한 수조 등 겉으로 보이는 실험 장치 상당수가 노이즈 차단을 위한 것이다.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실험실 예미랩의 내부. IBS의 이재승 박사가 중성미자를 검출할 아모레 실험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윤수 기자


이 박사의 가이드를 따라 LSC·아모레와 함께 예미랩의 3대 터널로 꼽히는 코사인(COSINE) 실험실도 둘러봤다. 아직은 텅 비었지만 이곳에서 ‘암흑물질’ 검출이 시도된다. 암흑물질은 우주에서 일반 물질(4%)보다 많은 26%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인류가 관측하지 못한 물질이다. 우주에서 별들의 분포와 움직임을 관찰해보면 눈에 보이는 일반 물질의 것보다 훨씬 큰 중력이 작용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중력을 가지는 암흑물질이다. 한국의 천재 물리학자 고(故) 이휘소 박사도 암흑물질 후보로 ‘윔프(WIMP)’라는 입자를 제안한 바 있다.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 실험실 ‘예미랩’의 내부. 사진=김윤수 기자


나머지 터널은 기상청,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외 연구기관, 대학 등이 터널을 빌려 다양한 연구를 할 예정이다. 기상청은 이곳에서 지진 예측 시스템을 고도화한다. 현재 11명인 예미랩 인력은 앞으로 80명 규모로 확대될 예정이다.

오태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이날 준공식에 참석해 “거대 연구 시설은 세계적인 연구 성과 창출에 필수적”이라며 “세계 6위 규모의 지하 실험실 예미랩을 더욱 세계적인 연구 공간으로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9월 29일 강원 정선군 지하 실험실 ‘예미랩’의 내부. 광부들이 쓰는 간이 화장실 2개를 예미랩에도 설치했다. 사진=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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