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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부활을 기다리는 빈 살만[윤홍우의 워싱턴 24시]




미국 마이애미에 어피니티 파트너스(Affinity Partner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트럼프 정부 시절 막후 실권자였던 재러드 쿠슈너가 지난해 여름에 설립한 투자 회사입니다. 이 신생 회사가 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원이 넘는 투자를 지난해 사우디 아라비아 국부펀드로부터 유치했는데요. 국부펀드 내부 심사 과정에서 반대가 상당했지만 사우디의 절대 권력자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전체 이사회가 이 투자를 승인했습니다.







최근에 바이든 정부와 사우디의 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의 전방위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주도하는 주요 석유수출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대규모 원유 감산을 하면서 백악관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요. 이 민감한 상황 속에서 트럼프 일가와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의 친밀한 관계가 새삼 다시 조명 받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자 가장 강력한 경제 파트너’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중동 혈맹’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전 세계 에너지 패권을 공유해온 ‘석유 동맹’이기도 합니다.

미국 워싱턴 DC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지금은 이 말이 좀 무색해진 것 같습니다. 마치 원수처럼 으르렁 거립니다. 물론 역대로 미국과 사우디의 사이가 늘 좋았던 건 아닙니다. 지난 9.11 테러 당시 19명의 범인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인 것이 밝혀져 미국 전역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테러를 총 기획한 오사마 빈 라덴의 아버지는 사우디 왕실 측근 기업인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두 나라 사이의 긴장감이 수년에 걸쳐 지속됐습니다.



버락 오바마 핵정부 때 추진한 이란 핵 합의는 사우디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사우디와 이란이 이슬람 내부에서 정파적(수니파 vs 시아파)으로 갈라진 숙적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후 결국 이 합의를 파기했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가 등장한 이후에는 워싱턴포스트(WP) 언론인 자말 카슈크지 살해 문제가 미국 언론을 도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문제를 두고 사우디를 ‘왕따’로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원유 감산을 둘러싼 이번 갈등은 좀 미묘한 시기에 불거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의 운명을 결정할 미국의 중간선거가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오펙+가 지난 5일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감산에 합의했습니다. 11월부터 일 200만 배럴씩을 줄이기로 했는데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약 2% 수준입니다. 실제 감산 규모는 그에 못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심리적으로 유가 상승을 자극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에 앞서 바이든 정부가 감산을 하지 말아 달라고 사우디를 설득했다는 점입니다. 백악관은 재닛 옐런 재무장관부터 시작해서 대통령의 예멘 특사인 팀 렌더킹까지 사우디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를 찾아 워싱턴 내부의 비판을 무릅쓰고 살인자라 불리던 왕세자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오펙+ 는 미국의 요청을 보기 좋게 묵살하고 미국의 예측 보다도 큰 규모의 감산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대통령이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백악관은 사우디와의 ‘관계 재설정'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은 더 발끈했습니다. 사우디에서 미군과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철수를 요구하는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특히 중간선거 재선을 앞둔 민주당 의원들의 분노가 컸다고 합니다. 미국 NBC 방송에서는 미국 정부가 기업들에게 사우디 투자를 줄일 것을 권고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사우디는 왜 이런 결정을 했고 미국은 왜 이렇게까지 민감한 것일까요. 물론 양측 다 명분은 있습니다. 사우디는 공격적인 통화 긴축과 함께 경기 침체가 시작되며 유가가 하락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국제 유가는 원유 감산 직전에 85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중동 산유국 중심의 석유 카르텔은 국제 유가를 90달러 이상으로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미국의 명분은 좀 다릅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가 시름하는 와중에 산유국 본인들의 잇속만 챙길 때가 아니라는 거구요. 특히 오펙+의 일원인 러시아가 유가 상승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민감했습니다. 사실상 사우디가 러시아를 지원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 사우디와 미국이 정말 감정의 골이 깊어진 건 다른 이유 같습니다. 바로 정치적 이유, 미국의 중간선거입니다.





사우디 외무부의 성명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미국의 제안대로 오펙 +의 감산 결정을 한달 미루면 경제적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이런 점을 미국에 꾸준히 밝혀왔다”입니다.

이를 보면 미국이 사우디에 요청한 건 ‘감산 한달 연기’입니다. 한달은 중요합니다. 11월 8일이 미국의 중간선거입니다. 바이든 정부는 이 때까지 기름값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어떤 변수도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인들에 있어 기름값은 ‘갤런당 4달러’가 심리적 마지노선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오펙+ 의 결정에 분노하며 대규모의 전략 비축유 방출을 바로 발표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우디가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는 우방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미국이 사우디에 제공하고 있는 막대한 안보 지원과 그간의 긴밀한 관계를 감안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명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는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특히 빈살만 왕세자의 등장 이후 이는 더 분명해졌습니다. 사우디 외무부가 미국 정부의 감산 한달 연기 요청 사실을 전 세계에 공개한 것 자체가 굉장히 도발적입니다. 당장 미 공화당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청문회를 열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중간선거에 개입했다는 겁니다. 사우디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좋은 공격 꺼리를 공화당에 준 셈입니다.

그렇다면 사우디, 아니 정확히 말해 빈살만 왕세자는 정말 미국과 돌아서려는 걸까요. 미국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 싱크탱크들 사이에서는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우디와 미국의 이른바 ‘석유 동맹’이 깨지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전 세계적인 탈 탄소 분위기 속에서 사우디는 석유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미국도 역시 탈 탄소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석유 패권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유지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최대한의 이익을 거둬야 합니다. 미국과의 석유동맹의 유효기간이 끝나가는 마당에 미국 비위를 다 맞춰줄 여유는 없다는 겁니다.

외교적으로는 이를 ‘미국 일방주의’가 약해지는 또 하나의 신호로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중동 산유국들은 최근 중국 러시아 같은 다른 강대국들과 정치적, 경제적, 심지어 안보적 관계를 확대하면서 미국 일변도였던 외교 정책 옵션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결정적으로 빈 살만 왕세자의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악강점’도 이번 사태를 빚은 이유일 것 같습니다. 최근에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두 정상은 상대방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는 얘기가 양국 정부 안팎에서 흘러 나옵니다.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인해 쌓인 앙금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빈살만 왕세자는 비공개로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 가 하면, 바이든 대통령도 현재의 사우디 체제에 대한 깊은 불신이 쌓여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빈살만 왕세자와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함은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에 더 악재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사업적’으로 사우디에 접근했습니다. 그가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찾은 순방 국가가 사우디입니다. 빈살만 왕세자의 궁중 쿠테타가 사실상 묵인된 것도 트럼프 정부 때의 일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사위인 쿠슈너와 빈살만 왕세자는 문자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향후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 그리고 사우디의 행보는 우리나라도 아주 민감하게 볼 부분입니다.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네옴 시티나 원자력 발전소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관심도 상당히 높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사우디 사업에도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미중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동의 변화에도 주목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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