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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삶은 계속돼…다시 이렇게'

◆박태준 문화부장

트라우마 딛고 살아나가야 할 일상

하루하루에 '공포와 불안' 없어야

헌법34조, 국가의 역할은 '국민보호'

깨어있지 못한 정부와 희생 기억해야

박태준 문화부장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상상할 수 없는 참상을 여과 없이 보고 들어야만 했던 10월 말의 일요일,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BTS의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을 반복해 들었다. 바이러스가 가져온 혹독한 일상을 슬기롭게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가 ‘그럼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주문처럼 다가왔던 모양이다.

노랫말처럼 ‘아무 일도 없단 듯이 하루가 돌아오기’는 가능하지 않더라도 살아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공포감 없이 오를 수 있어야 하고 왁자지껄한 시장 모퉁이에서의 막걸리 한잔이 예전처럼 유쾌해야 한다. 곧 시작되는 월드컵에 롱패딩을 입고서라도 길거리 응원을 나가겠다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불안함이 묻어나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종종 찾던 이태원 그 골목 어딘가의 일본풍 선술집에 갈 것이다. 나름 단골인 길 건너 양꼬치집 앞에서는 대기줄을 설 것이다, 그리고 다시 축제가 열리면 길거리 DJ의 음악에 몸을 맡기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런데 위로를 받고 싶었던 노래의 가사 한 줄이 가슴에 꽂혔다.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

어릴 적부터 핼러윈에 친숙한 청춘들은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그날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팬데믹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국민들은 후유증으로 찾아온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 버텨내려 할 뿐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도 이 터널이 곧 끝나기를 희망하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국가도 제자리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며 국민을 지켜주기 바랄 뿐이다.



6년 전 겨울 국민들에게 주권을 외치게 했던 이 나라 정부는 지금 다시 국가의 역할을 확인하게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이고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국가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느냐고. 무엇을 하기 위한 정부냐고. 그런데 누구도 속 시원히 답하지 못한다. 진정 국민을 위해 나라가 마주한 갈등과 침체와 혼란의 상황을 타개할 해법을 고민하고 있을까. 길을 알 수 없다면 출구도 찾을 수 없다.

지난 일요일 아침,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향해 걸었다. 오랜 세월 클럽과 맛집과 다양성의 상징이었던 그래서 흥겨웠던 이곳이 트라우마를 남긴 현장으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며 걸었다.

가던 길에 지나친 이태원 소방서 외벽에는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24시간 깨어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지하철역 1번 출구 앞에서 이른 아침부터 내외국인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하고 있었다. 수많은 꽃다발과 추모 글이 적힌 메모지가 빼곡하게 들어찬 그곳에서 추모객이 썼을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놀다가, 일하다가, 살다가…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갈게요.’

짧은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근처 카페와 케밥 집은 이미 문을 열었고 라멘 가게는 장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조그만 잡화점 사장님은 차양을 펴고 커다란 명품 숍 직원은 유리문을 닦았다.

BTS는 노래한다. ‘Yeah life goes on, Like this again. I remember…(그래 삶은 계속돼, 다시 이렇게. 난 기억해)’

노랫말처럼 우리들의 삶은 계속돼야 한다. 비록 국가가 깨어 있지 않더라도.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깨어 있지 않았음과 희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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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자 문화부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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