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인상 폭을 만장일치 베이비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으로 줄인 데 이어 내년 1분기 금리 인상 종료까지 시사한 것은 한미 금리 역전 폭이 더 확대되더라도 외환시장 불안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부에서 속도 조절 의견이 나온 데다 9월 이후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점차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원화 가치가 오히려 안정세를 되찾자 버틸 수 있다고 본 셈이다.
기준금리도 중립금리보다 높은 3.25%로 오르면서 경기 둔화 요인이 됐다. 여기에 주요국 침체로 우리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면서 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 이후 단기 자금시장 경색도 나타나면서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많이 나뉘었다”며 “최종금리 3.50%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위원이 3명 있었고 3.25%에서 멈추자는 위원이 1명, 3.75%로 올라갈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한 위원이 2명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미 연준에서 금리 인상 경로를 보여주는 점도표를 자체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이날 기준금리가 3.25%로 오른 만큼 앞으로 내년 1분기 중 금리가 한 번만 올라도 대다수 금통위원이 생각하는 최종금리 3.5%에 다다른다. 최종금리가 3.50%가 될지, 3.75%가 될지는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 총재는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를 계속하는데 여기서 ‘당분간’은 3개월 정도”라며 “한은은 12월에 금통위가 없기 때문에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보고 11월과 12월 물가 수준도 확인한 뒤 판단하겠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지난달 금통위 이후 미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이 5.00~5.25%까지 높아졌음에도 금통위원들이 최종금리 3.50%를 고수한 대목이다. 최종금리 기준으로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인 175bp까지 확대되더라도 국내 금융·외환시장이 버틸 수 있다고 본 셈이다. 금통위원들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외환시장 변동성 등 대외 요인에 중점을 뒀지만 이번에는 국내 금융 안정 상황을 주로 고려했다.
이 총재도 “연준의 금리를 본다는 것은 기계적으로 따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금리 격차가 심해졌을 때 외환시장이나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보겠다는 의미”라며 “이자율은 국내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금리 격차는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한미 금리 격차가 벌어졌음에도 금리 인상 속도 조절 소식만으로 시장이 굉장히 안정된 것이 바로 그 방증”이라고 했다. 이날 미 연준의 속도 조절 기대감에 원·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23원 60전 급락하면서 1328원 20전으로 마감했다.
이날 한은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2.1%에서 1.7%로 0.4%포인트 낮추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7%에서 3.6%로 0.1%포인트 낮춘 것도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의 근거가 됐다. 다만 11월과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락하더라도 기저 효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큰 만큼 내년까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충분히 수렴했다는 증거를 확신한 후 금리 인하를 논의할 것”이라며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기업 부담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이날 이 총재는 “김소월 시인의 시(詩) ‘진달래꽃’이 적힌 넥타이가 이자 부담이 늘어난 차주에 대한 위로의 의미냐”라는 질문에 “그런 해석을 받아들이겠다”며 “취약계층의 고통을 알지만 물가나 경기 성장 모두 대외 요인이기 때문에 조금 더 참을성을 가지고 정책 효과를 지켜봐달라”고 했다. 그러나 증권사 등 일부 금융시장의 어려움 호소에 대해서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이 총재는 “증권사 등은 부동산 시장이 좋을 때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스스로 버틸 힘이 있다”며 “한은은 금융시장 마비를 막기 위해 유동성 공급 원칙에 따라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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