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행보에 일희일비하던 세계 금융시장이 일본 저금리 시대의 종말이라는 또 다른 변수에 맞닥뜨렸다. 월가를 비롯한 각국 금융시장에는 일본은행의 긴축 행보가 몰고 올 리스크에 대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20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일본 국채 수익률 상한선을 높이겠다고 발표한 후 세계 주요국 채권 수익률이 동시다발로 상승했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전날 3.59%에서 3.69%로 10bp(1bp=0.01%포인트) 올랐다. 2.2% 수준이던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 역시 2.3%로 10bp 상승했으며 영국 10년물 금리는 9bp 올라 3.59%에 거래됐다. 호주의 10년물 채권 수익률은 20bp나 뛰었다.
전날 구로다 총재는 10년물 채권 수익률의 상한선을 기존 0.25%에서 0.5%까지 높였다. 사실상 시중금리가 더 오르도록 허용하면서 이 여파로 0.25%였던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21일 장중 0.47%까지 치솟았다. 2015년 이후 최고치다. 2015년 이후 마이너스에 머물던 2년물 국채금리도 장중 한때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날 채권시장의 움직임은 일종의 전초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UBS의 일본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아다치 마사미치는 “일본은행이 어떻게 표현하든 이번 조치는 출구전략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세계 각국의 자산시장에 스며들어 있는 엔화 자금의 이탈 가능성이다. 일본의 정책 전환이 본격화할수록 현지 금리는 상승한다. 그동안 엔화 기반 투자자들은 저금리를 바탕으로 고금리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에 나섰지만 일본과 해외의 금리 격차가 좁혀질수록 역외 투자 매력은 줄어든다. 이 경우 엔화 투자자들이 일시에 해외 자산을 팔아 치우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어시메트릭어드바이저 전략가인 아미르 안바르지데는 “금리 인상을 허용하면 일본 역외 자금의 쓰나미가 본국으로 밀려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거대한 '리셋'”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자금은 3조 달러를 넘어선다. 이 중 미국에 몰린 자금이 절반에 달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일본 투자자들이 보유한 국채 등 자산가치가 현지 국내총생산(GDP)의 9.5% 수준이며 호주 역시 GDP의 8.3%에 이른다. 프랑스와 미국도 엔화 투자자가 보유한 자산이 각각 GDP의 7.5%, 7.3%를 차지한다. 일본은행의 정책 방향에 따라 국가별로 GDP의 7~10%에 이르는 국채와 주식이 대량 매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9월 영국에서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발생한 연기금 위기와 같은 모습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세계 최대 채권 보유기관인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 모하메드 엘에리언 퀸즈칼리지 총장은 “기관들이 채권 매도에 나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9월) 영국에서 본 적이 있다”고 우려했다.
달러를 엔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달러 가치가 하락해 미국 물가를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 수입물가는 강달러가 본격화한 7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하락했다. 유로퍼시픽캐피털 CEO인 피터 시프는 “약달러는 미국 수입물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요인”이라며 “이렇게 오른 비용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이체방크의 글로벌거시연구책임자인 짐 리드는 “일본은행의 긴축정책은 차입 비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세계의 마지막 닻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엔 캐리 자금 회수는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일본은행이 내년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출하는 서프라이즈를 연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의 상한을 인상한 데 이어 내년에는 -0.1%인 단기금리도 플러스로 올릴 것이라는 얘기다. 수익률곡선통제(YCC) 폐기 가능성도 제시했다.
한편 본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구로다 총재의 후임으로는 나카소 히로시 전 일본은행 부총재와 아마미야 마사요시 현 부총재, 재무성 출신인 아사카와 마사쓰구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등이 거론된다. ‘아베노믹스의 계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아사카와 총재가 깜짝 발탁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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