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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세습 불법 판결에도 63곳 유지…법 어겨도 '과태료 500만원' 뿐

■최대 징역형…칼 빼든 尹정부

10년전에도 "청년희망 좌절" 판결

고용부 실태 조사결과 세습 여전

대통령실 "부실한 법률이 문제"

고용불법 뿌리뽑을 법제정 나서

"취업 약자에 공정한 기회 보장"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단체협약을 통해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배치되며 다수의 취업 희망자들을 좌절케 한다.”

2013년 5월 8일 울산지방법원에서 울려 퍼진 판결문이다. 당시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 업무상 재해(폐암)로 사망한 황 모 씨의 유족은 단체협약 제96조에 따라 “자녀를 특별 채용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재판부는 “취업은 많은 젊은이들의 희망이기도 하다”며 “경쟁 없는 채용으로 사라진 하나의 일자리는 누군가가 뼈를 깎는 인내와 단련으로 실력을 키워 차지하려 했던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 판결로 특정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이뤄지는 고용 세습은 불법행위가 된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민법 제103조에 따른 반사회 질서에 해당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2015년에도 현대·기아차에 자녀 특별 채용을 이행하라는 소송이 있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2013년과 같았다.

법원의 판결로 고용 세습은 사라졌을까. 8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실태 조사 결과는 2013년 고용 세습을 사회의 동력인 희망을 해치는 행위로 판결한 법원의 판단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8월 고용부가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을 조사한 결과 63개 기업이 여전히 정년퇴직자와 장기근속자, 노조와 직원이 추천한 자에 대한 우선·특별 채용 조항을 담고 있다. 정부가 매년 시정명령을 내리지만 해당 노조는 “사문화된 조항”이라며 고용 세습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고용 세습 근절에 나선 것은 노조의 주장과 달리 채용 특혜 조항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체협약에 명시된 고용 세습은 단순한 조항에 그치지 않고 있다. 2018년 현대차 하청 A 기업이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요구로 자녀 등 친인척 40명을 특혜 채용했다. 2019년에는 감사원 감사에서 서울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에서 직원의 친인척 333명을 채용해 적발됐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마사회가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직원의 친인척 96명을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불공정 채용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원희룡(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이 20일 세종시 산울동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을 방문,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와 관련해 공사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공정채용법을 제정해 고용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이유다. 고용 세습의 배경에는 부실한 법 체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17년부터 30인 이상 사업장에 전면 시행된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오히려 불공정 채용의 원흉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채용절차법은 당초 거짓 채용 정보 등 채용 사기를 막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한 채용 비리가 난무하자 국회는 시행 2년 후인 2019년 4월 출신 지역과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등 개인 정보 요구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 조항마저도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취업기회의 균등한 보장)가 명시한 구체적인 차별 행위(성별, 신앙, 연령,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학력, 출신 학교, 혼인, 임신, 병력 등)는 담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채용절차법 자체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 세습과 관련해 법을 어겨도 채용절차법의 최대 과태료는 500만 원에 불과하다. 고용절차법도 마찬가지다. 취업 기회의 균등한 보장이라는 차별 금지 조항만 명시했다. 법을 어겨도 벌칙이나 과태료 처분을 내릴 조항이 없다.

심지어 관련 법 자체가 불법행위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채용절차법은 공정한 채용을 침해하는 부당한 청탁과 압력·강요 등 소위 채용 협박을 막는 조항을 2019년 신설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과태료는 최대 3000만 원에 그친다.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건수도 7건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건설 현장 등에서는 소속 노조원을 채용하지 않으면 공사를 막는 불법행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대형 사업장 노조는 협박으로 채용 등 이권을 관철하고 과태료를 내는 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신년 주요 국정과제로 공정 채용을 내걸고 만연한 고용 세습과 협박 채용을 뿌리 뽑겠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이 적극적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지방 근무를 하며 노조의 불법 행위와 관련된 사건을 상당히 많이 다뤄봤고 디테일(세부 사안)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정채용법을 통해 청년 등 취업 시장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계층이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에 고용 세습 및 채용 협박과 관련해서는 노사를 불문하고 과태료가 아닌 징역형을 명시해 근절하겠다는 것”이라며 “불법행위가 있을 때는 정부가 사업장에 출입할 권한을 명시하고 대상자는 조사에 응할 의무도 담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게시판에 구인 정보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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