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이 조건 없이 대외 채무보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에 같은 업무를 하던 무역보험공사의 수출 중소기업 금융 지원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은과 무보 간 경쟁으로 관련 수익이 줄어들면 무보는 중소기업 대상 적자 사업에서 손실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무역적자 상황에서 애꿎은 수출 중소기업만 보험료 상승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5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수출입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에는 수은이 대출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한해 대외 채무보증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은 현지 통화로 거래가 진행되는 경우 대출 없이 보증만 제공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대외 채무보증 한도는 연간 무역보험 인수 금액의 35%에서 50%로 확대된다.
수은의 대외 채무보증은 무보의 ‘중장기 수출보험’과 사실상 같은 업무다. 해외법인이 국내 물품을 수입하면서 구매 대금을 국내외 금융사로부터 대출받을 경우 그 채무를 보증해 수출·수주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한다. 가령 외국 정부가 발주한 현지 건설사업을 우리 건설사가 수주하려면 이러한 보증이 필수적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은 양 기관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비슷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어 놓은 선을 없애겠다는 의미다.
기재부와 수은은 연평균 10억 달러 이상 지원 규모가 증가하고 자금 수요가 급증하는 방산·원전 분야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무보 측 주장이다. 무보 노조 측은 “무보의 보증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 파이가 늘어나지 않고 기관 간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공공기관 간 중복 업무를 없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 기조와도 충돌한다”고 말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무보의 정책금융 지원을 받는 수출 중소기업에만 보험료 인상의 불똥이 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무보는 중장기 수출보험에서 얻은 수익으로 단기수출보험·수출신용보증 등 수출 중소기업 지원 사업의 적자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금융 공공기관의 정책금융 운영 현황 분석’에 따르면 무보는 최근 10년간(2012~2021년) 중장기 수출보험에서 2조 7359억 원의 이익을 낸 반면 수출신용보증에서 9290억 원의 손실을 냈다.
다만 감사원은 무보 노동조합이 “대외채무보증 제도로 인한 해외 수주 무산 사례를 허위 작성했다”며 수출입은행 직원을 상대로 낸 국민감사청구를 지난해 기각한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폴란드가 정책금융기관의 채무보증을 요구하는 등 수은의 보증 수요가 커져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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