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국내 금융투자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외 진출 및 투자 확대를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증권사와 운용사가 거래 수수료와 같은 단순한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편 토큰증권(ST) 같은 신사업도 적극 개척하도록 할 방침이다. 금융 당국이 15일 “5대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야 한다”며 경쟁 활성화를 촉구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금투 업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채권시장 마비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이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부가 강력한 해외 사업 드라이브를 거는 데 대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투 업계에 따르면 이날 금융위원회는 최근 국내 주요 증권사와 운용사의 본부장급 임원을 소집해 금융투자 산업 발전 방향에 대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해외 진출 및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규제 완화나 준비 상황 등을 점검하면서 당국의 지원책도 설명하는 자리였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다만 간담회 이후 배포한 자료를 금융위가 전부 회수해갈 만큼 비밀리에 진행됐다.
금융위는 특히 증권·운용사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 현지 라이선스(사업권)를 취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정부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사항인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원대한 금융 산업 전략’을 만들어달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투자 업체가 글로벌 IB와의 경쟁에서 더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사업 전략을 가져가야 할지에 대해 검토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며 “일반 딜뿐만 아니라 부동산 관련 사업 등 영역을 가리지 말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받았다”고 말했다. 당국은 상반기 내 구체적인 해외 진출 확대 방안이나 결과물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공동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은행 같은 간접금융이 아니라 자본시장 중심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큰증권이나 기술 기반 금융 사업에서도 해외 성공 사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금융위는 대통령 업무 보고를 통해 올해 금융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국내 금투 업계에서는 이미 주요국에 진출해 있고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익성이 담보되는 주요 딜에 참여하는 것은 난도가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증권사는 55개 현지법인과 14개 사무소 등 총 69개 해외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홍콩·일본 등 아시아가 75%로 몰려 있고 미국이 17%를 차지한다. 국내 증권사 13곳이 해외법인을 운영 중이다. 미래에셋증권(006800)이 현지법인 12개, 사무소 3곳으로 가장 많고 한국투자증권(법인 9개·사무소 2곳), NH투자증권(005940)(법인 6개·사무소 2곳) 순이다. 신한투자증권(법인 5개·사무소 2개), 삼성증권(법인 3개·사무소 2개), KB(법인 4개·사무소 1곳) 등이다. 국내 증권사들의 2021년 말 기준 해외 현지법인 자산 총계는 30조 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7.9% 급감했다. 다만 순이익은 3627억 원으로 전년 대비 62% 늘어났다. 홍콩과 베트남 등 7개국을 중심으로 대부분 위탁 인수 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중국 등 국가에서는 영업제한 등으로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 업계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서 금융권에 경쟁을 주문하는 상황이 해외 진출 독려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 “미국은 물론 금융 선진국 영국과 동남아를 비롯해 주요국에 이미 나가 있고 또 글로벌 M&A에 참여하고 싶지만 솔직히 수익이 담보되는 사업을 국내 업체가 경쟁력 있게 따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야겠지만 고금리 상황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현실적으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아 여건이 녹록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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